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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우울증’이라는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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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우울증’이라는 베일

입력
2012.06.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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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여행을 다녀와서,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카페에 들어갔다.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잔 친근감 때문이었는지, 우리들의 대화는 내면 깊숙한 데까지 이어졌다. 친구가 이제는 부디 불안 없이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도대체 몇 살 즈음이 되어야 우리의 불안은 멈출까 하며 나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그날 TV에선 40대 주부가 우울증을 앓다가 투신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제 우리는 갖은 자살 소식을 밥 먹듯이 듣고 산다. 세계 자살률 2위의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1위인 나라답게, 자살예방센터가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생애주기별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한다고 한다. 어느 학교는 투신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건물 유리창을 완전히 열리지 않는 시스템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이런 대처들이 우리를 자살로부터 과연 보호해줄 수 있을까.

누군가가 자살을 하면, 자살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누구나 가지게 된다. 삶과 목숨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애정이 높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그 원인을 우울증이라고 보도할 때가 많다. 자살의 이유가 우울증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면, 거기에서 우리의 궁금증은 대부분 끝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우울증을 끔찍한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공포심을 공유한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우리와 가장 가까워진 질병 중의 하나인 이 우울증을 대하는 태도에 나는 불만이 많다. 누군가의 자살을 우울증 때문이라고 명시하는 태도가 무섭고 싫다. 청소년이 자살을 하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느니 자살 고위험군 학생이었다느니 하는 학교당국의 진술이 싫다. 학교 폭력에 시달린 청소년이 있다고 하자.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지 않았다고 하자. 그런 경우야말로 정신 이상인 것이 아닐까. 우울증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청소년이 정말로 건강했고 정상이었다는 뜻은 아닐까.

자살의 진짜 원인이 우리 사회의 가혹한 시스템에 있다는 정도는 이제 누구나 다 안다. 누구든 이 가혹한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며 살아내고 있으므로, 자살자의 개별적인 우울증만이 자살하지 않은 자와의 변별적 특징이 된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우울증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자살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이 우울증이라는 이유 앞에서 끝이 나서는 안 되며, 우울증이라는 그 이유로부터 궁금증이 출발되어야 한다. 뇌에 분비되고 있는 호르몬 이상에 대해 혹은 우울증을 벗어나게 해주는 각종 치료와 정신상담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우울증으로 내몰고 있는 갖은 시스템의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야만 한다.

대부분의 자살이 우울증이라는 결론은 폭력적이다. 자살을 방조하는 또 다른 시스템이라 부를 만하다. 이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신이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존재감을 갖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에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희미해진 자기 존재감을 돌보려던 자, 나는 그를 우울증 환자라고 명명하고 싶다. 시스템에 중독되어 무감해진 자는 자살하지 않는다. 행복에 진실로 집중해본 자만이 자살을 할 수 있다. 현실이 지옥이라는 것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극단에서는, 행복을 선택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정신상담의 과정을 기록한 스캇 펙의 을 읽어보면, 정신적 피해자보다 정신적 가해자에게서 위험한 정신질환이 발견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생애주기별 정신상담이 실시되고 정신상담과 자살예방센터가 우리와 가까워진 이 즈음에서, 가해자 위험군의 사람들에게 정신상담의 코스를 의무화하는 것은 어떨까. 기업에서는 해고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인이, 가족 안에선 비행 청소년이 아니라 부모가, 학교에서는 물질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된 피해 가해 학생들이 아닌 교사들이, 그러니까 우울증을 앓는 자가 아니라 세상 모든 ‘갑’들이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치료하는 게 우선이진 않을까.

김소연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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