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들이 읽은 내용을 모두 따라 밝힐 수는 없으나 서일수와 이신통이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서일수가 그해 겨울이 오기 전에 먼저 한양을 떠났고 큰스승을 만나면서 즉시 입도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이신통의 입도가 늦었던 것은 서일수와 사전에 아무런 논의가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또한 그때에 이신통은 경난처세(經難處世)를 공부한답시고 방랑의 길에 나섰던 기간이었다.
그날 밤 서일수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이른 아침에 약재를 내러 창고에 들른 곁꾼과 함께 그 댁 의원을 만나러 갔다. 조수와 더불어 약재를 협도로 썰고 약연으로 갈고 분주하게 일하던 의원에게 서일수가 인사를 하고는 뒷골목 창고의 수직 방을 얻어 사는 촌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를 가만히 살피던 의원이 웃음을 지으며 먼저 말했다.
아니, 댁은 전기수 물주 하던 담배장수 아니오?
서일수가 눈치 빠른 사람이라 얼른 알아채고 대꾸한다.
허어, 서울 도성이 언내 복주머니 안이라더니 좁아터진 데가 맞구려. 저어 배오개 연초전에 마실 나오시던 분이군.
오늘 전기수 아우는 어디 떼놓고 혼자요?
녀석이 아침잠이 많아서요.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거 참 잘됐군. 원래 구리개 약전 거리는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곳이라오. 나야 어눌해서 그러하지만 이 동네 의원들은 입담 자랑으로 한 세월을 보낸다오. 그 신통방통이에게 우리 가게 출입을 시켜야 되겠구먼. 행하도 연초전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 텐데.
의원이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이 길게 늘어놓으니 서일수가 얼른 거두절미하며 말을 돌렸다.
실은 좋은 물건이 있기에 감정이나 받아볼까 하구 왔소이다.
그가 가져온 합을 열어 보이자 그는 조심스럽게 이끼를 걷어내고는 두리번거리다가 대나무 젓가락을 찾아들고 산삼의 뇌두를 집어 올렸다. 머리카락 같은 잔뿌리들이 사방으로 뻗쳐 있는 것을 의원은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는 차례로 나머지 두 개의 산삼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뇌두의 마디를 보아하니 하나는 너끈히 백 년이 된 것 같소. 나머지 둘은 못돼도 칠팔십 년 근은 되어 보이고, 각각 가락지와 대추 모양의 구슬이 몸체에 있으니 약이 제대로 찬 것이오. 다리도 두 개 세 개로 잘 뻗었고, 색깔도 진한 황토색이니 이만하면 상등품이외다.
팔면 값이 얼마나 되겠소?
허허 서두르기는…… 이런 물건은 하늘이 내는 것이라 심마니들도 평생에 한 번 얻어걸릴까 말까 하는 것이라오. 우리 같은 의원들끼리 사고팔아서는 제값을 받을 수 없지요. 결국 임자를 만나야 한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산삼이란 생삼이 가장 으뜸이나 지금 말라가고 있으니, 즉시 팔지 못하면 약효는 좀 떨어지지만 쪄서 말리는 수밖에 없소. 물론 가격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서일수는 잠잠히 앉았고 의원도 곰곰 생각하다가 연상을 끌어다 백지 한 장을 서판 위에 올리고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곁에서 협도로 약재를 썰고 있던 조수를 돌아보더니 편지를 접어 내밀었다.
가회방 판서 대감 댁에 얼른 전하고 오너라.
조수가 의관정제하고 나간 뒤에 의원은 서일수에게 다시 말했다.
저것이 임자를 만나면 누천 냥을 받겠지만 아무리 못 받아도 천 냥까지는 헐값이오. 내게도 구전은 쳐줘야 되겠시다.
얼마나 드릴까? 나도 남의 심부름을 하는 짓이라……
천 냥이면 일 할, 천오백 냥이 넘으면 이 할 쳐주면 되겠군.
각서 두 장을 쓰고 의원과 서일수는 함께 수결을 한다. 서일수가 산삼이 담긴 합을 맡겨두고 각서는 품에 넣고 일어나려니 의원이 말했다.
뭘 그리 바삐 나가려 하시오. 오전에 손님도 없을 터인데, 낮것이나 함께 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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