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과 윤상의 인디 버전이랄까. 1인 밴드 형식의 에피톤 프로젝트는 인디 음악계에선 이미 '아이돌'이다. 인디 앨범은 1만장만 팔려도 '대박'이라는데, 에피톤 프로젝트의 미니앨범 '긴 여행의 시작'(2009)과 정규 1집 '유실물 보관소'(2010)는 각각 2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2년 만에 내놓은 정규 2집은 발매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벌써 2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15~17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연 세 차례의 공연은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이 정도면 '인디'라고 부르기도 겸연쩍은 인기다.
27일 만난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28)은 섬세한 감수성으로 가득한 음악만큼이나 조용하고 내성적인 청년이었다. "어렸을 때도 내성적이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긴 했지만 직업 음악인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데뷔 초부터 '무대 울렁증' 때문에 고생했다는 그는 "첫 공연 때 실수했던 곡을 아직도 공연에서 연주하지 못 한다"며 웃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은 감수성 예민한 청년의 일기장 같다. 맑고 투명한 서정성이 반짝반짝 빛난다. 윤상, 015B, 유희열, 어떤날 등을 관통하는 정서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 속에 짙게 흐른다. "대학을 한 학기 다니고 그만둔 다음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 작곡을 혼자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땐 윤상, 유희열의 음악을 카피하곤 했죠. 언제부턴가 미디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고 있다는 걸 깨닫고선 취미 차원을 넘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공연장은 20, 30대 여성 팬들로 가득하다. 유독 젊은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뭘까. 멋쩍은 듯 그는 "잘 모르겠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팬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가사와 멜로디가 좋다는 말 정도"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노래의 가사는 일상에서의 경험과 소설, 영화 등을 통한 간접경험을 바탕으로 쓴다고 했다.
새 앨범의 제목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2010년 말 루시아(본명 심규선)의 솔로 앨범 작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떠난 유럽 여행의 감성적 견문록이다. 한희정, 심규선 등 객원 가수의 목소리를 빌렸던 이전 앨범과 달리 이번엔 그가 모든 곡을 직접 불렀다. 그는 "타지에서 혼자 다니다 보니 생각도 많아지고 느끼는 것도 많았다"며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사를 쓸 때 자꾸 독백조의 혼잣말이 나오는 걸 보고 내가 직접 전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집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이전에 비해 공간감이 뚜렷해졌다. 그는 "꽉 채워서 압도적으로 보이려고 했던 1집과 달리 악기가 소품처럼 공간 속에 놓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체코 프라하의 하벨 시장,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 거리를 감성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12곡의 음악으로 주조됐다.
카펜터스나 아바 같은 팝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는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장르적인 변용을 계속 해보고 싶다"고 했다. 감성적인 팝뿐만 아니라 록을 시도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제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기간에 늘 순 없겠죠. 에피톤 프로젝트가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음악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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