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연체율이 치솟으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우선 부실위험이 큰 저신용 대출자들을 상대로 은행이자 감면과 원금 분납 등을 해주는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실 뇌관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2일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9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과 만나 은행권 공동 프리워크아웃 도입방안을 논의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은행 자체적으로 저신용ㆍ다중채무자들에 대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며 “부실 뇌관이 터지기 전에 차단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금융당국이 지난해 가계부채 총량 억제에 들어간 이후 제2금융권 등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가계부채의 질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사실상 가계대출로 분류되는 자영업자 대출(5월말 기준 164조원)을 합치면 가계부채 총액은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대출 증가세가 완만해졌다고는 하지만 올해 3월말 현재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660만명 중 250만명이 30% 안팎의 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주택담보대출자들의 자산가치 하락도 가계부채 부실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은행권 프리워크아웃은 1개월 미만 단기연체를 반복하는 저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낮춰주고 가처분소득 내에서 장기간에 걸쳐 원금을 나눠 갚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될 전망이다. 이미 신용회복위원회가 1~3개월 연체자를 대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국민은행도 비슷한 내용의 ‘신용대출 장기분할상환전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금감원은 프리워크아웃을 통해 잠재적 부실 위험군(群)의 채무를 조정하면 가계 파산을 억제하는 한편, 은행권의 충당금 적립 부담이 줄어들어 건전성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대출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프리워크아웃 확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뤘으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가계소득 증대 등 프리워크아웃의 한계를 보완할 대책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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