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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중·고, 만학도들의 경연대회 열고 실력 뽐내/ "알파벳도 몰랐는데 이젠 팝송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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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중·고, 만학도들의 경연대회 열고 실력 뽐내/ "알파벳도 몰랐는데 이젠 팝송 불러요"

입력
2012.06.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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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가수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의 히트곡 'YMCA' 음악이 흘러나오자 무대에 선 박옥화(54) 박창숙(56)씨 등 50~60대 여성 5명은 손과 다리를 흔들며 리듬을 탔다. 청바지에 짙은 선글라스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이들이 후렴구인 "와이 엠 씨 에이~"를 열창할 때는 그 동안 얌전했던 객석도 들썩였다. 박수만 치던 관객들은 일어서서 알파벳 YMCA를 그리는 율동을 흉내 내고, "와이 엠 씨 에이~"를 따라 불렀다. 대부분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 얼굴에 주름이 패인 관객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이들은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가 뒤늦게 학업에 뜻을 둔 중ㆍ장년 여성들이 다니는 일성여중ㆍ고생들이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는 이들 만학도들이 팝송 실력을 겨루는 경연대회가 열렸다. 일성여중ㆍ고교 28개 반에서 예선을 통과한 16팀(중ㆍ고교 각 8팀)이 참가해 그 동안 갈고 닦은 영어와 노래 실력을 뽐냈다. 참가자들은 'I want to hold your hand' 'The young ones' 등 올드 팝을 준비했다.

늦은 나이에 80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게 쉽지만은 않은 법. 긴장한 탓에 율동과 가사를 까먹고, 팀원들이 서로 박자를 놓쳐 돌림노래가 되기도 했다. 'One way Ticket'을 부른 중학교 1학년 박규량(52) 홍미자(51)씨는 "영어 독음을 일일이 한글로 적어 노래 가사를 외웠다"며 "알파벳도 잘 몰랐지만 이젠 길거리에서 나이키(nike)처럼 영어로 된 브랜드 간판을 읽을 수 있어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고 웃었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이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수업을 받고 있는 김경애(51)씨는 2009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아 수술한 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니다 학교 홍보 전단지를 받아 보고 지난해 입학했다. 14살 때 아버지를 여의어 5남매의 맏딸로 집안 살림을 하느라 중학교를 중도 포기했던 미련이 남아있던 터였다. 김씨는 "1년 반 정도 영어를 배웠는데 우리 말에 없는 관계대명사가 너무 어렵다"면서도 "이제 쉬운 단어는 리스닝도 된다"고 자랑했다. 이선재 교장은 "1년에 영어 노래 한 곡은 외워 부르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2005년부터 팝송경연대회를 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어려워하던 노래를 외워 무대에 서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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