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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들] <4·끝> 21세기 강철왕을 꿈꾼다-바오샨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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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들] <4·끝> 21세기 강철왕을 꿈꾼다-바오샨철강

입력
2012.06.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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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6월 중국 철강업계에 '대사건'이 일어났다. 세계철강협회(WSA)가 발표한 전년도 세계 조강생산 순위에서 자국 바오샨(寶山)철강(이하 바오강)이 한국의 포스코를 사상 처음으로 제치고 3위 업체에 이름을 올린 것. 중국 업체들은 "비록 물량만이긴 하나 마침내 박태준(포스코 명예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며 일제히 환호했다.

중국 철강 역사에서 박태준은 경외의 대상이자 반드시 극복해야 할 존재였다. 악연(?)은 30년 전인 197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최고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을 필두로 중국의 개혁ㆍ개방 정책이 막 태동하던 시점. 내심 철강산업을 경제성장의 기틀로 삼고자 했던 덩샤오핑은 일본 최대 철강업체 신일본제철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의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같은 철강회사를 설립하고 싶다"는 뜻을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賀寬) 회장에게 피력했다. 그러나 요시히로 회장은 덩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는가"라는 게 이유였다.

굴욕을 맛본 덩샤오핑은 절치부심했다. 그 산물인 바오강은 그 해 12월 '중국판 포스코'를 꿈꾸며 상하이 동북부에 터를 잡았고, 30년 만에 결실을 거두게 됐다.

조강 생산량(2011년 기준)에서 바오강(4,330만톤)은 같은 중국 업체인 허베이(河北) 그룹(4,440만톤)에 뒤진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중국의 철강기업하면 바오강을 먼저 떠올린다. 포스코가 한국산업화의 아이콘이듯, 바오강 역시 중국 고도성장의 심벌이다.

바오강은 중국 국영기업이 으레 그렇듯,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경영, 기술개발, 판매처 확보 등에서 무한한 자율성을 누렸고, 98년엔 상하이 군소 철강사들을 흡수해 명실상부한 그룹 반열에 올랐다.

몸집 불리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바오강은 신장(新疆)자치구 1위 철강 업체 바이강철(2008), 저장(浙江)성 닝보강철(2009), 푸젠(福建)성 더성니켈광업공사(2010) 등을 잇따라 집어 삼키며 내륙과 해안지역을 아우르는 전국 기업으로 거듭났다.

바오강은 그러나 시장지배력 확대에만 골몰하지 않는다. 바오강은 중국식 시장경제의 장점(빠른 의사결정)을 십분 살려 신규 시장을 개척하면서도 기술확충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설비 노후화로 도태에 직면했던 광저우강철이 2008년 바오강에 인수돼 기술 경쟁력을 회복한 뒤, 동남아 시장 공략의 거점으로 탈바꿈한 것이 대표적이다.

규모와 품질의 동시 추구 전략은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 2010년 세계 철강 경기의 장기 침체 속에 중국 철강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대에 머물렀을 때, 바오강은 11.3%의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외신들은 당시 바오강의 약진을 "경영 효율성과 자금력, M&A의 이점을 두루 버무린 통합의 효과"라고 평가했다.

기술력을 갖춘 거대 공룡의 등장은 국내 철강업계에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바오강은 4월 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GNS와 투자 협약을 맺고, 국내에 자동차 강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바오강이 첫 해외 직접투자지역을 한국으로 선정한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쉬러지앙(徐樂江) 바오강 회장은 "한국은 바오강이 강판, 후판 등 대부분의 제품을 수출하는 핵심 시장"이라며 한국 진출 의사를 분명히 했다.

물론 품질이나 기술력 면에선 아직 포스코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국내 중견 이하 철강업체 수준은 이미 따라 잡았으며, 고급강재에서도 위협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소업체 합병을 통한 바오강의 통합화 전략은 분명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며 " 성장 촉매제 역할을 해왔던 중국 정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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