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동반성장 활동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봉사활동이나 일회성 자금지원이 아닌 협력업체들과의 파트너십 구축, 이들의 자생력 강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항시적인 소통 채널을 구축하는가 하면 친환경 기술지원, 직급별 인력양성 프로그램 제공 등 맞춤형 동반성장 모델도 등장했다. 협력사도 세계적인 수준이 돼야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추진 중인 동반성장 정책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한화건설, 대표가 직접 공사현장의 애로 청취
지난 22일 세종시 도시행정구역3-1블록 조성공사 현장. 한화건설 이근포 대표가 현장을 찾아 협력업체와 소통을 위한 현장 간담회인 '동반성장데이'를 개최했다. 이날 참석한 충청ㆍ대전지역 협력사 10여 곳의 대표들은 김 대표와 현장을 둘러보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한 업체 대표는 "여러 대형 건설회사와 함께 일을 해봤지만 대표이사가 직접 지방 현장에 내려와서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라며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동반성장데이는 협력사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 2010년부터 시작한 한화건설의 대표적인 상생 프로그램이다. 분기별로 대표이사, 외주구매실장 등 본사 임원들이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개선점을 찾아가고 있다. 올 2월에는 동반성장, 공정거래질서 확립, 상호 경쟁력 제고를 위한 협약을 협력업체 13곳과 공동 체결하는 등 동반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호철 한화건설 외주구매실장은 "한화건설은 은행대출금리를 할인 받을 수 있는 '동반성장펀드', 급한 자금이 필요할 때 마이너스 통장과 같이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론' 등 다양한 금융지원 프로그램으로 협력사들을 돕고 있다"며 "특히 공사대금지급 부분에 있어서는 현금결제 비율을 90%대로 상향했으며, 1억5,000만원 미만의 저가 공사에 대해서는 100%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건설은 기술연구소 주관으로 협력업체와 공동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신기술 지정을 위한 지원도 펼치고 있다. 또 협력사의 전문 인력양성지원을 위한 기술교육, 재무교육,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협력업체와 해외동반진출을 위한 온라인 영어교육도 추가했다.
■ 대우건설, "협력업체 재정 후원" 저금리로 대출
대우건설은 협력회사의 성장이 곧 회사의 발전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협력회사와 동반성장! It's Possible'을 슬로건으로 앞세우며 다양한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0년 건설업계 최초로 동반성장 전담부서 '상생경영팀'을 설치하고, 지난해 10개 건설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 합동선포식의 주관사를 맡는 등 건설업계 동반성장 문화 정착에 앞장서 왔으며, 올해도 강화된 협력회사 지원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대우건설이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건설경기 침체를 맞아 경영난에 봉착한 협력업체를 위한 재정지원이다. 대우건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대우건설 자체출연금 100억원에 은행출연금까지 조성해 협력회사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협력업체들은 별도의 담보 제공 없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올 하반기에는 협력회사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총 170억원의 긴급운영자금을 직접 지원할 계획이다.
대금지급조건도 개선하고 있다. 협력회사의 자금 수지에 도움이 되도록 100% 현금성 결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 현금 지급비율을 45%(2011년 41%)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교육지원에 초점을 맞춰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자금지원뿐 아니라 교육ㆍ기술개발 지원을 통해 협력회사의 근원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동반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대우건설은 협력회사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한 경영교육 및 임직원 대상의 실무능력 강화 교육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병행실시 중이다. 교육인원과 횟수, 과목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 현대제철, 기술 공동개발… 파트너십 쌓기
현대제철은 글로벌 철강사로의 도약에 발맞춰 지역사회 및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실제 현대제철은 내년 하반기 당진제철소의 제 3고로가 완공되면 기존 전기로(1,200만톤)를 포함해 연간 2,400만톤의 조강생산능력을 지닌 세계적 철강사가 부상하게 된다. 그런 만큼 협력사들도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금융지원과 기술교육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은 우선 중소업체들의 안정적 기업활동을 위해서는 금융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이자 대여, 어음기일 단축 등 유동성 확보를 위한 금융 혜택을 주고 있다. 지난해 제강 원료 공급사인 철스크랩 업체들의 시설투자를 위해 165억원의 무이자 대여를 했고,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도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사들에게는 77억원의 지급보증 수수료를 지원했다.
또 동반성장펀드에 80억원을 출연하고, 기업은행과 '녹색설비 브릿지론' 업무 협약을 맺어 친환경설비 및 부품 납품 협력업체에 50억원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설 명절에는 구매대금 등 2,652억원을 조기 지급하고, 하도급 대금을 100% 현금 결제해 협력 업체의 자금 운용에 숨통을 열어주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다양한 금융 지원 외에도 기술 및 교육 분야 등에서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단순히 업무로 엮인 갑을 관계, 수직적 관계를 넘어 협력사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기술을 전수해 주는 수평적 관계 설정에 힘을 쏟고 있는 것.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해 기준으로 협력사들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사례가 제품설계 기술지원 47건, 내진설계 기술교육 16건에 달했다.
■ CJ그룹, 600명 정규직 전환… 일자리 창출 앞장
CJ그룹의 올해 최대 경영화두는 상생과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위해 취약계층 및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다양하면서도 획기적인 지원 방안들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선 지난해 연말 비정규직 6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파격적인 고용안정책을 발표했다. CJ는 당초 1년 뒤인 올 연말까지 정규직 전환을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기간을 앞당겨 8월 말까지 이를 마무리 할 방침이다.
CJ그룹은 또 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협력업체 택배기사의 자녀들을 위해 학자금 지원제도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지원금은 대학생의 경우 연 150만원, 고등학생은 80만원, 중학생 20만원이다. CJ대한통운과 CJ GLS에서 1년 이상 근속한 택배기사들 자녀 2,003명에게 총 12억5,000만원이 지급된다. 대기업이 정규직이 아닌 협력업체 직원의 복지를 고려해 학자금 지원에 나선 사례는 업계 최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CJ 계열사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우수 아르바이트생에게 연 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CJ제일제당도 최근 물건 판매의 마진을 줄여 그 만큼의 혜택을 소비자와 협력업체에 모두 돌려주는 '국민제품'도 출시했다.
■ 아모레퍼시픽, 상생협력포탈 만들고 기금도 확대
아모레퍼시픽의 '동반 성장'은 협력사에 대한 단순한 지원을 넘어 그들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데 포커스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원료와 포장재 등을 제조하는 협력사들과 상호 소통을 확대하고, 그들의 인재교육을 지원하는 등 유기적인 동반자 관계 형성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우선 협력사,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공정한 거래와 동반성장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상생협력포탈'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가 교환되는 장이 마련됐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협력사에 대한 자금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문. 협력사의 안정적인 자금운용과 시설투자 자금 지원을 위해 2005년부터 협력사 상생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펀드규모를 100억원으로 늘리고, 지원대상도 포장재 뿐 아니라 화장품 원료 협력사들까지 확대해 이들의 생산과 품질 설비 투자, 신제품 개발 설비 도입을 돕고 있다.
또 인재 양성 교육 기회가 적은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직원들의 직급별 맞춤 교육 프로그램 시행을 돕고 있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해외 연수도 지원해 2002년부터 지난 해까지 200명 이상이 해외 우수업체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협력사들에게 친환경 생산기술을 이전, 저탄소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그린파트너십'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09년~2010년에는 20개 협력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하고, 배출량 감축을 위한 진단과 컨설팅을 해줘 포장재 및 원료 부문 협력사에서 총 130여건의 개선안을 만들어냈다.
■ 두산, 상생 점수 일일이 따져 CEO 평가 반영
"동반성장은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적으로 증명하라."
올해 4월 취임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틈날 때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 강조하는 말이다. 두산은 몇 년 전부터 동반성장에 정성을 기울여 왔지만, 박 회장 취임 이후에는 더욱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특히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이행 실적을 4개 항목으로 나눠 분기별로 점검하고 CEO평가에도 반영하고 있다. 이들 4개 항목은 경쟁력 강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 재무지원은 하는지, 해외시장 동반진출을 돕고 있는지, 협력업체와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있는 지 등이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는 다양한 동반성장 방안을 세부 경영계획에 포함시키고 매 분기 경영실적 보고 때 추진실적을 필수 항목으로 보고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협력회사들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현금결제 비율과 무상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동반성장펀드 조성도 지원하고 있다. 또 발주물량 예고제, 신기술 공동개발 및 국산화 등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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