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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데뷔 40년 국민배우 고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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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데뷔 40년 국민배우 고두심

입력
2012.06.2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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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갑에 춤추는 연극 도전 나를 점검하고 싶었죠…그런데… 떨리네요"

그 흔한 연기력 논란 한 번 없이 40년을 달려 왔다. 1972년 MBC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거의 매년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지상파 방송 3사의 연기대상은 물론 한국방송대상, 백상예술대상 등 웬만한 연기상은 다 휩쓸었다. 간간이 영화에 출연할 때도 "역시 고두심"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고두심(61)은 40년간 수많은 배역과 연기를 능숙히 소화해온 배우인 만큼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는 일도 일상일 터. 그런데 뜻밖에 그는 "겁이 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7월 24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는 연극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레슨'(Six Dance Lessons in Six Weeksㆍ이하 '댄스레슨')에 출연한다. 아내로,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온 노년기 여인 릴리가 6주 동안 스윙, 탱고 등 여섯 가지의 춤을 배우며 참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고두심의 연극 출연은 2007년 '친정엄마' 이후 5년 만이다. 26일 연극 연습 장면 공개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공연을 위해 준비한 춤 실력을 공개한 소감은 어떤가요.

"만족스러워요(웃음). 관객의 기대감을 키워 괜히 실망만 안겨드리면 어쩌나, 겁도 나지만요. 연극 출연이 처음은 아닌데 이렇게 춤을 많이 추는 연기는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춤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 가지나 되잖아요. 그래도 평소 새벽에 산행 다니며 키운 다리 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5년 만에 연극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친정엄마'를 같이 했던 제작사에서 3년 전부터 연극 한 편 더 하자고 졸랐는데, 글쎄 이 작품이 마음에 쏙 드는 거예요. 더 나이 들면 못 할 역할이다 싶고. 그리고 올해가 연기 시작한 지 40년 되는 해니까 기념도 하고 나를 점검도 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일에 부딪쳐 보자 생각한 거죠. 그런데 나 지금 이 말 하면서도 계속 떨린다니까."

-천하의 고두심이 떨린다니요.

"바로 그런 말 때문에 더 무서운 거죠. 많은 분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그만큼 기대치가 높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래도 그 흔한 '연기력 논란' 한 번 없으셨잖아요.

"왜요, 입도 못 떼던 시절도 있었어요. 탤런트 시험에 합격해 비중은 크지 않지만 대사가 있는 역할을 첫 작품으로 맡았죠. 대본 리딩한다고 선배들과 모였는데 작은 공간에 평소 동경하던 선배들과 앉아 있는 자체가 너무 떨리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대사 한 마디 못 뱉어 보고 화장실에 가서 울었어요."

제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와 작은 무역회사 경리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4년 만에 탤런트 시험에 합격해 '미스 고' 생활을 청산한 그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 간 출연한 '전원일기'를 비롯해 '사랑의 굴레'(1989) '춤추는 가얏고'(1990) '한강수 타령'(2004) 등 굵직한 대표작을 남기며 꾸준히 활동해 왔다. 그는 "드라마 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22년 간 장수한 드라마에 출연한 것만 봐도 나는 참 행운이 따르는 배우였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 다니셨죠.

"아무리 배우가 되고 싶어도 공짜 밥을 먹으면 안 되겠기에 일단 취직을 했죠. 직원이 열명 남짓한 회사라 현금출납 담당 겸 급사 겸 사장님 비서 역할이었어요. 그래도 내 안에는 늘 뭔가 갖춰지지 않은 형태의 광기랄까, 신기랄까 그런 게 있었나 봐요. 4년간 회사에 다니다 탤런트 시험을 봤죠. 연기자 생활 초기에는 형편이 어려워서 시험에 합격하고도 2년 정도 회사를 더 다녔어요."

-22년 동안 한 드라마에 출연하면 연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나요.

"그래요,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겠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생활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데 나는 그래도 '전원일기'라는 행운을 만나 편안하게 배우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럼 가슴 속에 간직한 그 뜨거움을 발현할 기회가 부족했을 법한데.

"사실 나는 그렇게 치열하게 산 사람은 아니에요. 물론 나 스스로는 어떤 지점에서는 치열하다고 느꼈을 수 있겠죠. 그래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라고 해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다만 묵묵히 한눈 횰?않고 살아온 게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TV 토크쇼에서 영화 '애마부인'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죠.

"보수적인 시대이기도 했지만 내가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럼 내가 지금 젊은 시절로 돌아가 그런 제안을 다시 받는다고 가정한다면 수락했을까? 아닐 거예요. 단지 그 때 그 작품에 출연했다면 내가 지금 어떤 배우로 성장해 있을지 궁금한 거죠. 지금처럼 '몸뻬 엄마' 역할만 맡지는 않았을 테죠."

-엄마 역할만 하기에는 아름다운 외모가 아깝다는 생각은 안 하는지.

"내 사고가 좀 진부해서 엄마 역할을 자주 맡는 점은 만족스러워요. 나는 전통과 옛 것에 매달리죠. 이를테면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식의 사고 같은. 성별에 따라 인격적인 차이는 없지만 육체적인 힘의 차이는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춤추는 연극에 도전하게 됐는지.

"이제는 나이가 들고 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할리우드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도 꿔요."

-'춤추는 가얏고'에 출연해 호평 받아서 그러신지, 춤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시네요.

"고교시절에 고전무용을 배웠어요. 당시 도 대표로 뽑혀 민속경연대회에 나갈 만큼 재능도 있었던 것 같고."

요즘 대부분의 연기자가 그렇듯 고두심은 TV, 영화, 연극 가리지 않고 출연하지만 그래도 그에게 주무대는 TV드라마다. 편집이나 재촬영이 없고 행동 하나하나에 관객의 눈빛이 따라오는 연극 출연은 할 때마다 무섭다고 한다.

-40년 간 연기를 하면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시기도 있었을 텐데.

"쉬고 싶을 때가 있기는 했죠. 그런데 마치 무속인처럼 사흘만 쉬면 몸이 아파요. 오히려 드라마를 찍으면 더 편안하고. 텔레비전 매체에 나오는 배우는 6개월도 쉬면 안 돼요. 조금만 공백 생겨도 어디 성형수술 했거나 살쪄서 그런다고 시청자가 의심하거든요."

-너무 자주 출연하면 신비감이 없잖아요.

"영화배우는 신비감을 유지하는 게 맞지만 텔레비전 배우는 항상 시청자와 밀착 관계에 있어야 해요. 시청자가 찾으면 슬리퍼 신은 채로 가는 아줌마 같은 캐릭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텔레비전은 생활이니까 항상 손을 뻗으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정작 시청자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데요.

"어휴, 나는 무슨 봉사활동에만 가도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그러느냐는 소리를 듣는데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나가고 싶겠어요?"

-최근 인터넷에서 땅부자라느니 누구와 사귄다느니 하는 엉뚱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죠?

"너무 어이 없는 이야기들이에요. 조카 손주들이 '고모할머니가 인기가 있어서 소문도 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그런 대열에 끼지도 못한다'고 해서 '그래, 그 말이 맞다'고 했어요."

-무대 연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무대는 피할 곳이 없어요. 실수로 조명에서 벗어나면 검게 어두워진 내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죠. 그래서 무섭기도 하지만 연극 한 편 제대로 하고 나면 TV 연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매년은 아니지만 꾸준히 무대에 서려고 해요."

이번이 국내 초연인 연극 '댄스 레슨'은 리처드 알피에리 원작으로 미국에서 2001년에 초연됐다. 릴리가 댄스 강사 마이클(지현준)에게 스윙, 탱고, 비엔나왈츠, 폭스트롯, 차차차, 컨템포러리 댄스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중요하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나이 드는 것의 의미다. 자신을 '나이 든 사람'이라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던 릴리의 상처와 치유를 그린다.

-호흡을 맞췄던 배우 중 특별히 잘 맞았던 상대배우가 있나요.

"'전원일기'의 김용건씨 빼고는 남편들이 모두 바람쟁이여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없네요. 꼽으라면 '목욕탕집 남자들'(1995)에서 장용씨 역할 정도."

-멜로드라마에서 사랑 받는 역할로 출연하고 싶은 생각 없나요.

"로맨스에 특별히 미련은 없는데 그래도 한 남자에게만 사랑 받는 그런 역할은 아직도 해 보고 싶어요. 오드리 헵번의 자서전에도 그런 말이 있다고 하대요. 한 남자의 아내로 헌신하는 삶을 원했다고. 아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게 덧없다는 것을 아는 배우의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 거예요."

-혼신을 다해 해 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그야 당연히 지금 이 연극의 주인공 릴리죠. 저는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게 중요하지, 내일 어떤 작품이 내게 올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배우는 항상 뽑히는 사람이라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저 어떻게 하면 많은 시청자와 관객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까 그 생각뿐이죠."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ㆍ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이수연 인턴기자(성신여대 국어국문 4년)ㆍ이소영 인턴기자(이화여대 도예 3년)

■ "몸뻬 입으면 시골 며느리… 드레스 걸치면 현대여성…

고두심은 많은 제주 여자들이 그렇듯 제주에서 바람을 견디며 강하고 끈질기게 버티는 인내를 배웠다고 한다. 특히 풍파를 겪기 쉬운 배우의 직업을 선택하고도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별탈 없이 견뎌올 수 있던 것은 제주 출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고백했다.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www.kodoosim.com)에 띄운 '나의 삶, 나의 생각'이라는 글에 따르면 부친은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가셨다. 다시 남태평양 사이판에다 보따리를 풀고 일본을 오가며 무역업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사업을 한 후 제주에 돌아와 어머니를 만났다.

고두심은 3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제주 남문동(현 중앙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자랐는데 주변에서는 어머니의 외모를 제일 빼 닮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평범한 학창시절 어렴풋이 영화배우의 꿈을 꾸었지만 처녀들을 뭍으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제주의 풍습 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굳은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유학중인 오빠 뒷바라지를 해준다는 핑계로 상경했어요. 한일합작 무역회사에 다니던 중 MBC공채에 뽑혔죠. 하지만 배역이라곤 고작 가정부나 호스테스, 그나마도 없을 땐 심부름만 했어요."

하지만 서서히 그는 두각을 드러냈다. 드디어 1975년 '귀로'에서 당시 톱 탤런트 이정길과 함께 주인공을 맡았고 1980년에 시작된 전원일기에서 큰 며느리 영남엄마역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만 단막극까지 포함해서 100편 이상. 영화 17편, 연극 9편. 상당수는 아줌마나 할머니 역이다. "큐 사인만 떨어지면 무슨 역할이건 흠뻑 빠져들어요. 몸뻬를 입으면 시골 맏며느리가 됐다가 드레스를 걸치면 현대적 여성으로 바뀌었죠."

앞으로 인생에 대한 계획은 소박하다.

"그냥 이렇게 40년을 왔네요. 노후에는 고향에 내려가 텃밭이나 일구고 내 손으로 닦을 수 있는 작은 방 정도의 공간만 갖추고 살려고 해요."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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