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이 강단에 섰다. 유통, 제지, 교육담당 애널리스트라면 응당 관련 유망종목을 콕 집어줘야 하련만 그는 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운집한 350명의 투자자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증권사 주최니 한 점 의심 없이 투자설명회라 여겼던 몇몇 투자자들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웬만한 입시전문가 뺨쳤다. 사교육시장 현황을 능숙하게 읊더니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 대입 등 각종 입시 전형의 변화상, 대응전략 등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했다. 무려 116쪽에 이르는 보고서 제목도 베스트셀러 '수학의 정석'을 패러디 한 '교육의 정석.'
강연 뒤에도 열기는 식을 줄 몰랐으니 학부모들은 김 연구원을 둘러싸고 30분 넘게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자녀가 국제중에 다니는 학부모는 "장삿속으로 흐르기 쉬운 사교육업체가 아닌 증권사가 객관적으로 입시내용을 분석해줘 믿음이 간다"고 했다.
이쯤 되면 슬쩍 펀드계좌 유치서류라도 디밀 법한데, 증권사는 그저 만족한 눈치다. 김 연구원은 "주식도 중요하지만 자식농사만큼 중요한 게 없지 않느냐"고 했다. 강남 아파트 부녀회에서 세미나 요청이 들어오고 1,000부 넘는 보고서가 동이 나 다시 찍을 정도니 고객의 맘을 사로잡은 건 확실해 보인다. 기세를 몰아 부산 광주 울산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강연회도 연다.
21일 한화증권 서울 갤러리아지점은 커피 향이 그득했다. 어렵게 불러모은 VIP고객과 잠재고객에게 금융상품이나 특정종목을 홍보할 요량으로 커피를 대접했다 여기면 오산이다. 이날 설명회엔 애널리스트 대신 바리스타가 불려왔다. 투자자들은 집에서 손쉽게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배웠다. 이곳에선 음악회와 미술품 전시회도 열렸다. 한 고객은 "추천종목 소개 등 획일화한 설명회와 달리 배우고 즐기면서 투자를 고민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앙꼬(팥소) 없는 찐빵'은 거들떠보지 않는 법. 그런데 최근 증권사엔 투자(앙꼬) 없는 투자설명회(찐빵)가 늘고 있다. 본디 투자설명회는 다수의 투자자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시장상황 등에 대한 강연을 하고 투자와 금융상품 가입을 유도하는 자리. 증시가 활황일 때는 증권사가 애써 권하지 않아도 돈 벌 정보를 귀동냥이라도 하려는 투자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대외변수에 증시가 휘청거리자 기존 투자설명회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각종 분석과 전망을 담아 추천을 해줘도 씨알이 안 먹히는 형국이다. 실제 올 초 10조원에 육박하던 하루 평균 주식거래대금은 절반 수준으로 꺾인 상태. 주식거래 수수료가 주수익원인 증권사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감히 투자설명회에서 투자를 빼고 있는 것이다. 돈보다 마음을 얻어 후일을 기약하겠다는 전략인 셈.
증권사들이 투자 대신 앞세우는 건 입시, 문화, 여가, 체험 등이다. 예컨대 승마클럽파티, 향기허브 여행, 조선왕가체험(우리투자증권), 클래식음악아카데미, 포토아카데미, 패션쇼와 함께하는 스타일링 클래스(삼성증권), 명사 초청강연(대신증권) 등이다. 여기에 투자전문가들의 조언을 양념처럼 배치하는 식이다. 자문회사 대표나 증시 재야 고수 등의 강연이 주력이었던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다만 아직은 주로 돈깨나 있는 VIP 고객에게만 관련 행사가 집중된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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