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MBC가 파업 150일을 맞는다. 당초 원인이 무엇이든 나라 전체의 문제로 커져버렸다. 단순한 노사갈등이 아니다. 월급을 올려라, 근무시간을 줄여라, 등속의 근로조건이 아니다. '공정언론'이라는 근로내용이 문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바로 알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론의 자유는 여느 자유와 다르다. 민주주의가 탄생한 원인이자 이를 지탱하는 핵심적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기본권 중에서 언론의 자유는 '우월적 지위'를 누린다. 언론기관, 특히 방송은 국민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공정한 보도가 더없이 중요하다.
물론 언론사마다 견지하는 입장에 따라 '의견'과 '비평'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사실보도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언제나 정권은 언론에 민감하다. 어느 정부나 언론을 장악하고픈 유혹에 끌린다. 언론이 정부를 비호할 수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부를 대변하기 보다는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에 더욱 기대를 건다. 정권에 호의와 애정을 가진 국민도 국정 홍보보다는 건설적인 비판을 선호한다. 새정권이 들어선 후 MBC의 기본논조가 크게 달라진 느낌이다. 눈에 띄게 정부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이나 보도가 줄었다. 때때로 정부에 부담이 될 사실이 보도조차 되지 않기도 한다. 다른 방송들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는 세론이다. 통신산업의 선진화를 내세우면서 법과 제도를 바꾸었다. 사업을 주도한 대통령의 측근은 각종 비리 혐의로 이미 옥중신세다. 그리고 방송국의 인사와 프로그램의 편성에도 깊이 관여했다. MBC의 파업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해 확대된 것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다.
김재철씨가 대통령의 선거캠프 출신이라서 사장이 못될 이유는 없다. 거론되고 있는 개인비리도 사정당국이 엄정하게 조사해 줄 것으로 믿는다. 사장은 소신에 따라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때때로 일부 구성원의 징계도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징계사유가 정치적 소신이나 공정언론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을 이유로 한 것이라면 큰 문제다. 여권에서는 '좌파노조의 정치적 파업'으로 성격을 규정했다. 만약 김사장의 징계조치가 사내의 '좌파세력의 척결' 차원에서 단행된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좌파' 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도 않거니와, 좌파가 악이고 위법인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신조와 성향의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반목을 조장하는 대량 징계행위는 사장으로서 무책임을 넘어 야비한 행위다.
MBC사태, 이젠 정치로 풀 수밖에 없다. 19대 국회가 개원조차 못하고 있는 숨은 사유 중의 하나다. 정몽준의원을 비롯한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의원이 최근 마침내 입을 열었다고 한다. 파업이 징계사태까지 확대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노사 간에 조속히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 침묵보다 별반 나을 게 없다. 사실상 여당을 장악하고 있는 분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의 표시가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관심뿐만 아니라 해법까지 주도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정수장학회문제와 함께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제기될 문제가 아닌가.
41년전, '민족주의 혁명'임을 표방하고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5ㆍ16 군사정부가 뺏은 사유재산이었다. 통상의 법리 대신, 국가와 민족이라는 초법의 공영성을 내세운 은밀한 언론장악사업이었다. 물론 오늘의 MBC가 곧바로 그때 김지태씨가 강탈당한 장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빛나는 공(功)을 상속하려면 선친의 과(過)에 대한 겸허한 반성도 함께 따라야 한다. 그게 표를 줄 국민의 정서일 것이다. MBC파업의 해결, 그가 해내지 못하면 12월의 승리도 없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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