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이집트에 제공해 온 연 수십억달러의 군사원조를 두고 미국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민주화 개혁을 외면해 온 이집트 군부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면 군사원조의 중단이 필요하지만 원조 중단이 미칠 대내외적 부작용을 생각하면 쉽게 쓸 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 권한을 축소한 이집트 군부를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며 "미국 내에서 대응 수위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집트 과도정부를 장악한 군부의 잇단 반 개혁 조치를 우려하면서 군부가 약속한 7월 1일을 기해 민정 이양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최근 신임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박탈한 임시헌법을 통과시켰다. 무슬림형제단이 승리한 총선 결과를 무효화한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군부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스티븐 맥키너리는 FT에 "민주화를 이행하라는 수사만 난무할 뿐 미국은 실제 조치로 이어질만한 행동에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며 "미국은 이집트 군부에 가시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은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중동평화조약을 맺은 1979년 이후 연평균 20억달러의 원조를 이집트에 제공하고 있다. 대 이스라엘 원조에 이어 미국 대외원조 예산에서 두번째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경제난으로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 이집트에게 매년 꼬박꼬박 들어오는 수십억달러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다. 군부의 태도를 바꾸는데 수백번의 비난 성명보다 군사원조 중단이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주 "2012년분 군사원조액 대부분인 13억달러가 아직 미국 은행에 예치돼 있다"며 군부의 조치에 따라 원조를 중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원조를 중단할 경우 미 방위산업체들이 이집트와 맺은 무기계약 역시 대거 파기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원조가 끊긴 이집트 군부가 이스라엘에 적대적 조치를 감행할 우려도 있다.
한편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당선자는 25일 카이로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후세인 탄타위 장군 등 군부 최고위층과 권력 이양 방식 등을 놓고 협상했다. 무르시 당선자는 현재 각료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인데, 현지에서는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지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등의 입각설이 나오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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