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조직화되고 자치가 이루어지는 협동 노력에 관한 이론적 설명 체계가 충분히 개발되고 수용될 때까지는 여전히 다음의 가정, 즉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없고 항상 외재적 권위체에 의해서 조직화될 필요가 있다는 가정 하에서 주요한 정책들이 결정될 것이다."
12일 췌장암으로 사망한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의 에 나오는 주장이다. 오스트롬 교수는 개개인의 지나친 욕심으로 공동체의 자원이 고갈되는 소위 '공유의 비극' 상황에서 시장도 정부도 아닌 지역 주민들의 자치적 노력에 의한 공유자원 관리가 유효하다는 대안을 제시해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가령 목초지 관리에 있어 목초지의 사유화나 정부의 규제 보다 주민들의 자율적, 자치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롬은 최근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단일한 국제적 법제화를 넘어 주 정부, 도시, 심지어 대학 기숙사 차원에 이르기까지 자치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제도와 다양한 풀뿌리 환경정책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스트롬 교수는 학부 졸업 후 비서직으로 시작해 대학원 시절 대학 행정실 직원 일과 석ㆍ박사 공부를 병행하는 등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한 첫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그러나 오스트롬 교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정치학자다. 위에 인용한 는 필자가 가르치는 '시민정치론' 과목의 주요 교재 중 하나다. 2010년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디아나대 정치학과 소속 석좌교수인 오스트롬 교수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동료 석좌교수이기도 한 남편과 함께 월급의 절반을 학교 연구실을 위해 기증해 왔으며 노벨상 상금도 내놓았다. 당시 한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자식이 없는 노부부에게 있어 연구실에 있는 제자들이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민정치와 참여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위 인용문에 내포되어 있는 오스트롬 교수의 시민 자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다. 잘 읽어보면 마치 일반 시민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무시하고 외부적 권위에 의한 해결만을 고집하는 자들을 꾸짖고 있는 듯하다.
현 한국정치의 추세는 시민정치다. 1987년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의 등장, 2000년 낙천낙선운동, 2008 촛불집회와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 그리고 작년 서울시장 선거와 현 대선 정국에 이르기까지 시민정치의 부상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최근 국민참여경선제, 참여예산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추첨민주주의 등 여러 가지 구체적 제도와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일반 시민의 참여와 자치 능력을 폄하 내지는 평가절하하고 있는 엘리트주의자들의 시각이다. 국민참여경선의 경우 당원 중심의 정당정치를 훼손하는 한편 일반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거나 역선택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 한 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나 통합진보당이나 공히 당원 중심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사당 혹은 패거리 정당의 성격이 강하며, 여기서 국민참여경선은 오히려 정당정치를 쇄신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동원과 역선택도 일반 시민들의 집단지성과 능력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위에 여러 가지 논의되고 있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다.
서울시 참여예산제 관련해 한 보수 신문은 '초등생이 22조 예산 심의?'라는 식으로 일부 문제를 침소봉대하기도 한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잘못했으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식으로 받아치고 있으니 추첨민주주의 도입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를 대학 기숙사에서 자치적으로 풀자고 주장하는 분이 노벨상 수상자 아니던가?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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