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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박정희 혐오와 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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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박정희 혐오와 애착

입력
2012.06.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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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이유'라는 언론인 고종석의 진보신문 칼럼을 읽고 우울했다. 대선 때까지 이런 글과 말을 숱하게 읽고 들어야 하고, 그 옳고 그름을 다퉈야 할지 갈등할 것이 싫다. 오래 전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부정과 혐오에 맞서 그의 삶과 행적에 대한 개인적 소회(素懷)를 드러내는 건 더욱 내키지 않는다. 그걸 곧장 박근혜 지지로 여길 상황도 달갑지 않다.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동기는 고종석이 얼마 전 트위터에서 나를 언급한 때문이다. 젊은 동료가 읽고 전해준 글에서 그는 나를 논객이라고 부를만한 보수라고 추켜세운 뒤 "박정희에 대한 애착만 끊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덧붙였다. 그때 미룬 답을 겸해 그의 글을 논평한다. 지식인의 신념을 바꿀 순 없겠지만, 대선 국면의 소모적 논쟁을 줄이는 데 도움 되기 바란다.

그는 박근혜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딸이기에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박정희는 민족과 조국을 배신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이다. 그 딸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 긍지가 손상된다는 것이다. "밥 세끼 입에 들어간다고 공동체의 긍지를 포기한다면 짐승과 다를 게 뭐냐"고 했다.

박정희 혐오가 깊은 탓인지 논리가 거칠고 성기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지 내겐 모호하다. 박 대통령의 일본군 경력을 민족 반역으로, 좌익 연루를 대한민국 배신으로 규정한 것도 조야(粗野)하다. 1917년 태어난 식민지 청년의 삶의 조건, 변전을 거듭한 역사의 조건을 헤아린 흔적이 없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삶을 '무의식적 자기실현의 역사'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인격은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한다. 엉뚱한 억지 해석일 수 있으나, 어느 시대 어떤 조건에서든 모범적 삶은 없다는 뜻으로 새긴다. 독립과 건국에 이바지한 훌륭한 조상들도 있지만, 훨씬 많은 절대 다수 민중은 현실의 삶과 역사의 조건에 얽매였다.

예컨대 박정희 연배의 '참군인' 이종찬도 일본 육사를 나왔다. 국군 원로 백선엽은 만주 봉천군관학교 출신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만주국 관리였다. 이들은 19세기말 대한제국에서 태어난 이승만 김구 신익희 등 앞선 세대의 항일 독립투사들과 달리 일제 통치에 순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테면 같은 세대의 장준하가 학병에서 탈출해 광복군에 가담한 것과는 다른 길을 택한 사실만으로 민족 반역자로 규정할 수 있을까. 혼돈 속 해방 공간의 좌익 연루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피로 이룬 제2 공화국을 군사반란으로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았다는 규정은 또 어떤가. 역사학자의 연구를 인용하면, 5ㆍ16 직후 장준하의 비판적 지식인 잡지 도 제3세계 군사혁명 특집을 낼 만치 '조국 근대화' 담론에 끌렸다. 주한 미 대사는 "놀랄 만큼 많은 지식인과 언론인, 정치인이 쿠데타를 불가피한 좋은 일로 여겼다"고 기록했다.

유신 독재는 군사 파시즘으로 얼룩졌으나 동시에 국민국가와 민주주의의 물적 토대를 닦은 시대이다. 특히 반(半)봉건적 사회 질서에 억눌리고 귀족적 명망가 중심의 정치와 공론에서 소외됐던 하층 농민과 노동자 등 대중은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그렇게 국민의 자발적 동원과 열정을 이끌어냈다는 역사적 현실 인식을 외면하거나 송두리째 부정하고 오로지 박정희를 혐오하는 것은 참된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았든 아니든 국민 다수가 그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것과도 동떨어졌다.

박정희 혐오와 애착은 대개 역사적 현실의 간접 체험이 바탕이다. 협소한 사적 인식 또는 신념을 대통령을 뽑는 국민적 선택의 기준으로 높이 쳐드는 것은 알량한 지식인의 독선이기 쉽다. 너나없이 역사와 현실에 겸허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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