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루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첸리췬(錢理群·73) 전 베이징대 교수가 지난 21일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는 <망각을 거부하라> (그린비 발행)를 비롯해 <내 정신의 자서전> (글항아리), <마오쩌둥 시대와 포스트마오쩌둥 시대> (한울ㆍ출간 예정) 등 대표작이 최근 잇따라 번역돼 국내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중국의 비판적인 지식인이다. 마오쩌둥> 내> 망각을>
중국 문학사를 처음으로 20세기 전체 흐름에서 분석했던 첸리췬은 1998년 중국의 교육제도를 비판한 공개강연 후, 2002년 교수직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정년퇴임했다. 퇴임 직후 발표한 저서가 <망각을 거부하라> 다.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등 민감한 사건의 공론화를 중국 정부가 규제하고 있으며, 이처럼 역사의 망각을 강요하는 당국의 방침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망각을>
첸리췬은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1994~95년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지낼 때 중국과의 (객관적)거리를 확보하며 비판적 연구가 가능했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인터뷰 질문은 류준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가, 통역은 이성현 인하대 강사가 맡았다.
-선생은 원래 중국문학, 특히 루쉰(魯迅) 연구자로 유명한데, 근래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를 화두로 현실문제까지 관여하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무엇인가.
"최근 중국 대학의 문제점은 체제화와 기술화다. 대학의 제도적 틀은 통합적인 시야를 막고 있다. 마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작업은 대학제도가 설정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 퇴직 후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했다. 문제의식 자체는 1994년 한국방문때 부터다."
-선생의 연구는 '루쉰'과 '마오쩌둥'이 두 축이다.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절반이 마오쩌둥 시대와 겹친다. 마오 시대가 사회주의 중국은 물론 나의 삶과 사상도 규정했다. 따라서 그 시대를 향한 비판적 인식은 나 자신에 대한 비판적 해부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루쉰은 '생명의 얽힘'이라고 했다. 이것은 루쉰이 자신과 전통문화(봉건성)의 관계를 인식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루쉰의 눈으로 마오쩌뚱 시대와 지금의 현실을 보고자 한다."
-선생이 스스로를 '루쉰 좌파'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태도인가.
"일부 베이징대 학생들은 나를 '배트맨'이라고 부른다. 양쪽 모두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박쥐의 형상을 빌어 나의 '역사적 중간물' 입장을 빗댄 것이다. '루쉰 좌파'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며 영원한 비판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반(反)권력, 반(反)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발전 방향을 놓고 대립하는 세력 중 신좌파와 자유주의가 대표적이다. 선생은 한때 신좌파로 분류되다가 최근에는 양쪽 모두의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신좌파는 국가주의적 경향이 뚜렷하고, 자유주의는 불평등 문제를 부각한다. 쌍방이 모두 내 발언에 불편해하지만,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비판당하는 관계는 아니다. 다만 나로 인해, 그들이 자신의 입장을 상대화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최근의 저서에서 중국의 국가 체제를 '57체제' '64체제'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의미의 개념인가.
"'57체제'란 1957년 '반우파운동'을 거치면서 확립된 중국의 통치 체제이고, '64체제'는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에 구축된 체제이다. '57체제'의 특징은 여러 가지겠으나, '공산당의 권력 독점'과 '제1서기로의 권력 집중'이 핵심이다. '64체제'는 공산당의 권력과 시장의 자본이 결합하여 형성된 통치체제이다."
-'57체제'와 '64체제'는 어떠한 관계인가.
"나는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57체제'의 핵심적 특성은 그대로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특성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57체제'와는 달리 '64체제'에서는 실제로 특권계급이 형성되었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정적 현상이 가능하도록 만든 조건이 바로 '57체제'였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른바 '충칭(重慶) 모델'이 최근 보시라이 사건 이후 주춤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최근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중국에서 '충칭 모델'과 같은 지방단위의 실험은 격려가 필요하다. 그러한 실험을 통해 전국으로의 확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충칭에서의 정책 실험은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근본적 체제가 변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개혁은 힘들다. '제1서기의 독재'라는 '57체제'의 주요한 특징이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다. 보시라이의 공과를 떠나, 그 실험이 어떠한 감독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개인의 의지에 의해 전횡되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후진타오 정권을 계승할 시진핑 시대의 중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중국의 권력 이양 방식은 알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 내에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차세대 중국의 지도부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기층 인민들의 삶을 경험한 세대다. 동시에 외국 유학 경험도 많아 국제 감각도 갖추고 있는, 고급간부의 자제들이다. 이들은 앞 세대보다 훨씬 더 강하게 '통치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긍정적 변화를 이끌겠지만,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학술적으로는 '민간사상사' '지식인 정신사' '루쉰 연구' 삼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다. 청년 NGO 단체에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싶다. 초중등교육에 더 힘을 보탤 것이며, 소수민족과 지방문화 연구의 촉매가 될 지방사 편찬도 진행할 것이다. 한해의 주요한 정치 시사 사건을 회고하고 총결하는 평론도 계속 쓸 생각이다."
-70대인데도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는가.
"평생 고통과 제약은 있었지만, 나는 결코 반체제 인사나 피해자가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 때문이다. 나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희생되었거나 침묵을 강요 받고 있다. 나는 살아남았고, 어느 정도의 발언권은 보유하고 있다. 희생자들, 침묵하는 자들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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