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앉은 대청 앞으로 마당 건너편에 하루 두 끼의 밥을 지급하는 감옥의 주방이 보였다. 주방채 옆의 쪽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에 옥리들의 수직소가 있고 너른 안마당을 담장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왼편이 남옥이오 오른편이 여옥이었다. 원옥(圓獄)이라 하여 옥사 주위에 다시 두 길이 넘는 담을 둥글게 쳐놓았으니 관문에서부터 겹겹이 담으로 둘러쳐진 셈이었다. 옥사정이 남옥의 문에 이르자 지켜 섰던 옥리가 문을 열어주었고 둥근 담 안에 들어서니 길게 일자로 지어진 옥사 네 채가 둥근 담을 등지고 두 팔을 벌린 듯 늘어서 있었다. 그 모두가 소수의 인원으로 많은 죄수들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도록 지은 것이었다. 규모가 지방 관아의 옥이나 감영 옥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중하고 컸다. 옥사의 하반(下半)은 두꺼운 판벽이고 상반(上半)은 한줌 굵기의 통나무 간살을 끼워 통기도 되고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죄수들 쪽에서는 겨울철에 좀 춥기는 하겠으나 누워서도 하늘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죄수들은 목에 칼을 쓰고 발에는 차꼬(足枷)를 차고 느지막한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정오경에는 순서에 따라 원옥의 마당에 나와 햇볕을 쬘 수 있었다. 죄목에 따라 옥사를 달리 하였는데 강절도나 살인 등 흉악범의 옥사가 가운데 있고, 좌측에는 뇌물 받고 포흠 진 관리나 빚쟁이 좀도둑 등 각종 이재범(利財犯) 등이 있으며, 우측에는 역적(逆賊) 죄인이나 사학(邪學) 등 강상범(綱常犯)들의 옥사였고 그 옆의 맨 끝 칸은 사형수와 교수(絞首) 칸이 나뉘어 있었고 징벌 칸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재범 옥사는 돈이 돌고 가족들과의 면회도 잦아서 죄수들 행색도 깨끗하고 얼굴에 윤기가 돌았건만, 흉악범 옥사는 악형을 받고 들어와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썩는데다 굶주림까지 겹쳐서 살아 있는 시체들 같다고 하였다. 눈을 번히 뜨고 있건만 기동을 못하게 되면 병사했다 보고하고 그대로 맨 끝 옥사의 징벌방이자 시체방 칸에 던져 넣어버렸다. 방치해 두었다가 죽으면 한밤중에 쓰레기장에서 소각시켜버린다. 다만 강상범 옥사는 차꼬만 채우지 않았을 뿐 흉악범의 옥사처럼 규율이 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옥사정은 수직하던 옥졸과 함께 역적 강상범 옥사로 다가가서 갇힌 죄수들을 둘러보았다.
박도희가 누군가?
칼을 쓰고 앉았던 자들 중에 누군가가 제 얼굴 옆까지 간신히 손을 올려 보였다. 옥사정이 눈짓하니 옥리가 간살 문을 열고 그의 칼을 풀어준 다음에 부축하여 데리고 나왔다. 상투는 이미 풀어져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었는데 세수도 못한 채 새카만 얼굴 가운데서 눈만 반짝였다. 그는 마당으로 나서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옥사정이 죄수를 데리고 원옥을 나와 다시 감옥 안담의 쪽문을 열고 면회소로 나오자 대청에 앉았던 서일수와 이신통은 얼결에 일어서서 그들을 맞았다. 서일수가 신발도 채 신지 못한 채 섬돌 아래로 뛰어 내려가 죄수의 두 손을 잡았다.
박 서방, 이게 무슨 횡액인고.
형님이 여긴 어찌 오셨소?
죄수도 그의 손을 마주잡더니 잠시 우는 모양이었다. 옥사정은 마루 끝에 묵묵히 앉아 있었고 서일수는 박도희를 이끌고 대청에 올라가 그의 손을 잡은 채 잠시 말을 잊었고 이신통은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서일수가 그에게 물었다.
처결은 어찌 나왔나?
삼복(三覆) 중에 두 번 받았으니 이제 마지막 처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잘 되겠지요.
이신통이 그를 바라보니 비록 피골이 상접하였으나 눈빛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쉽게 아프거나 죽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신통을 향하여 슬쩍 고갯짓으로 인사를 전하였다.
여러 말 할 거 없이 우선 옷부터 좀 갈아입고 뭘 좀 먹어야지.
이신통은 서일수의 보퉁이를 풀어서 무명 저고리와 바지며 속곳을 내주었고, 박도희는 서슴치 않고 여러 군데 찢어지고 옷고름도 떨어져나간 저고리와, 가랑이에 검은 피딱지가 말라붙은 바지도 벗고, 알몸이 되었다가 속곳 걸치고 새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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