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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들] <1> 백색의 시장을 점령한다- 하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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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들] <1> 백색의 시장을 점령한다- 하이얼

입력
2012.06.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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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깊은 불황에 빠지면서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중국기업 역시 이젠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한 '다스호스'가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실질적 파워리더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 역시 이젠 세계 곳곳에서 중국기업과 경쟁자로서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과연 한국의 대표기업들을 위협하는 중국의 라이벌들은 어떤 곳들이고, 어떤 정도의 경쟁력으로 무장되어 있는지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1984년12월 칭타오(淸島)의 냉장고제조 국유기업 하이얼(海尔)은 파산직전 상태였다. 공장장으로 급파된 35세의 젊은 공산당 관료 장루이민(張瑞敏) 관료는 기가 막혔다. 직원들은 공장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봤고 비품과 자재는 마음대로 훔쳐갔다. 도저히 정상적 방법으론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루이민은 해외 수출용 냉장고 78대를 꺼내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해머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품질불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시위였다. 당시 냉장고 1대 가격은 중국 공장 노동자의 3개월치 봉급에 해당됐다. 그는 직원들에게 "우리에게 봉급을 주는 건 공산당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라며 불호령을 내렸다.

중국에서 하이얼은 국유기업이기에 앞서 인민기업이다. 대다수 중국 국민들은 하이얼에 대해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값싸게 제공하면서 국가 브랜드까지 높이는 일등공신"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중국의 전자제품시장은 세계적 기업들의 각축장. 하지만 하이얼은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시장에서 20% 중반대 점유율로 20년 가까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이얼은 이제 중국대륙을 넘어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고 있다. 전 세계에 10개의 연구개발(R&D) 센터, 24개의 생산공장 등을 보유하면서 160여개국에 제품을 팔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냉장고 세탁기 모두 10%대 점유율로 '세계 5대 가전업체'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2006년 139억 달러에 머물렀던 하이얼 매출도 지난해엔 233억 달러까지 껑충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프리미엄 백색가전시장은 미국의 월풀과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면서 "중저가 시장은 사실상 하이얼이 지배하고 있고 점차 프리미엄급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지로도 보면 하이얼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2009~11년 3년 연속 월풀이 아닌 하이얼을 세계 백색 가전 브랜드 1위로 뽑았을 정도다.

하이얼은 현재 막대한 '차이나 머니'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기업과 기술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최근 10여년 동안 하이얼이 세계 곳곳에서 M&A한 기업은 15개나 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중국기업들이 그렇듯 하이얼도 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하기 보다는 기술을 가진 업체를 사들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일본굴지의 산요로부터 백색가전부문을 인수한 것. 하이얼은 지난해 7월 산요의 상용세탁기와 가정용 냉장고사업 및 동남아 판권을 사들였는데, 당시 일본에선 한 수 아래로 평가하던 중국기업에 자국 대표기업이 팔린 것을 두고 '굴욕'으로 평하기도 했다. 산요의 가전제품은 동남아에서 하이얼의 2배 가격에 팔리고 있는데, 업계에선 이번 인수로 하이얼이 단숨에 '저가'이미지를 벗게 됐다고 평하고 있다.

난파선에 가까웠던 하이얼이 이렇게 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역시 리더십이었다. 직원들 앞에서 냉장고를 부쉈던 장루이민은 지금까지도 CEO로서 하이얼을 이끌고 있다. 하이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장루이민 대표의 경영방침"이라며 "끊임없는 품질혁신이 지금의 하이얼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의 지휘 아래 품질경영으로 새롭게 무장한 하이얼이 소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 소비자 취향에 맞춰 내놓은 혁신제품들이 잇따라 눈도장을 받으면서였다. 당시 하이얼은 '고구마 세척 겸용 세탁기'란 기발한 제품으로 빅히트를 쳤다. 스촨성(四川省) 주민들이 여름엔 세탁기를 빨래하는데 사용하지만 겨울에는 식용인 고구마 등을 씻는 데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 이 세탁기를 만들었는데 초도 물량 1만대가 하루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 판매대수를 떠나 고객에게 다가가려는 하이얼의 노력 자체가 소비자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게 됐다는 평가다.

임태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하이얼은 현재 백색가전을 넘어 TV 등 가전시장 전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하이얼을 바라보는 수준이 '주의'였다면 이젠 '경계경보' 수준까지 올려놓고 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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