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62주년을 며칠 앞둔 21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수리. 6ㆍ25전쟁 참전용사 김도현(85)옹의 집에 육군 50사단 영덕대대 예비군 소속 홍성태(51) 축산면대장이 찾아왔다. 김옹이 수훈 대상자로 지정된 지 60여년 만에 화랑무공훈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고서다. 홍 면대장에게서 "훈장이 내려올 것"이란 얘기를 들은 김옹은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국가가 이렇게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줬다는 게 정말 고맙고 기쁩니다."
육군 3사단 소속으로 초산전투와 흥남철수작전에 참가했던 김옹에게 '잃어버린' 훈장을 찾아준 사람은 바로 홍 면대장이다. 수훈 대상자 명단에 김수현이라는 엉뚱한 이름이 올라 있었는데도 훈장 주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홍 면대장이 지난 3년간 쌓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한 덕분이다.
홍 면대장은 이름과 주소지만으로 사람을 찾기 위해 10여년 전에 쓰던 구형 전화번호부부터 펼친다. 요즘 전화번호부에는 이름마다 주소지가 딸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름을 못 찾으면 우리나라 고유의 작명 방식인 '돌림자'를 활용해 문중 사람을 찾는다. 김옹을 찾을 때도 전화번호부의 해당 주소지에서 '현'자를 돌려쓰는 김씨들을 훑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11월 '김진현'이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김옹의 동생이었다. "김수현은 모르고 김도현이란 이름을 쓰는 형이 참전했다"는 답변을 듣고 홍 면대장은 옥편을 뒤졌다. 김옹의 이름 '도(燾)'자에서 마음 심(心)이 떨어져 나가니 '수(壽)'자가 됐다. 손으로 쓴 한자이름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름으로 둔갑한 것이다.
"육본에서 김옹이 수훈 대상자가 맞다는 확인을 받은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홍 면대장은 24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옹을 직접 찾아가 참전 경험담과 60여년 간의 고달팠던 역정을 듣고 나니 내 눈에서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며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고 밝혔다.
홍 면대장이 훈장을 찾아주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같은 대대 강구면대장으로 재직할 당시 육본에서 12명의 명단을 받아 5명에게 훈장을 찾아줬다. 그 중 한 사람이 1999년 말 이미 작고한 참전용사 권태인옹이었다. "강구면 일대에선 권옹의 악명이 높았어요. 술을 마시면 나라를 지키다 다친 다리라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 일쑤여서 가족에게도 원망의 대상이었다더군요. 살아계실 때 찾았더라면 가족들의 오해를 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 때부터 수훈자들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주겠다고 결심한 그는 3년여 동안 68명의 참전용사에게 훈장을 되찾아 줬다. 이 공로로 2009, 2011년 인사사령관 표창도 받았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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