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특수강도, 마약밀매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 강제 출국당하고도, 나이와 이름만 바꿔 재입국한 중국동포(조선족)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1999년 산업 연수 차 한국에 첫발을 디뎠던 조선족 김모(44)씨는 비자 만기 이후에도 국내에 불법 체류하다 2003년 술집 여종업원을 흉기로 위협해 강간했다. 그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강제 추방됐지만, 3년 만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꿔 무난히 재입국했고 위조한 신분으로 한국 국적까지 얻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중국에서 브로커를 통해 새 신분을 샀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역 소재 공안부(파출소)가 관리하는 호구부(주민등록부)는 아직 전산화가 안 돼 브로커에게 400만~500만원만 주면 신분을 조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특히 이 위조한 신분증을 가져가 중국에서 만든 여권은 정식여권이었던 터라, 김씨가 새 비자로 입국해 귀화하고 농수산물센터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릴 때까지 그의 신분이 '세탁'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족 이모(63)씨도 같은 방법으로 신분을 둔갑했다. 그는 2003년 이혼한 전 남편을 감금하고 때린 뒤 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 등)로 유죄를 선고받고 중국으로 돌려보내졌지만,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이름을 조작했고 나이도 두 살 적게 바꿨다. 2007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검찰에 붙잡히기 전까지 서울 강남구에서 입주 육아도우미로 버젓이 일하고 있었다.
신분세탁에 제재가 없었던 탓에 신원을 2~4번씩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범행을 일삼아 온 경우도 있었다. 양모(61)씨는 외국인등록증 위조 등으로 두 번이나 적발돼 중국으로 쫓겨나고도 3개의 신분을 번갈아 사용하며 한국을 드나들었다.
완전범죄를 꿈꾸던'변신의 귀재'들의 행각은 검찰이 4월부터 법무부 출입국 이민특수조사대와 공조해 ▦범죄 전력 외국인 사진 ▦귀화 중국인 사진 ▦외국인 안면인식시스템 입국자 사진기록 등을 대조하면서 들통났다. 안면인식시스템을 이용하면 얼굴 윤곽, 이목구비 비율 등을 분석해 동일인 후보군을 추릴 수 있고, 지문대조까지 하면 해당인물을 사실상 100% 찾아낼 수 있다. 안면인식기는 전국 공항 및 항만에 약 360대가 설치돼 있으며 올 1월부터 17세 이상 입국 외국인은 반드시 이를 거친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흥락)는 신분을 세탁한 혐의(공문서위조 등)로 조선족 130명을 적발해 그 중 이씨 등 11명을 구속 기소하고, 김씨 등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4일 밝혔다. 달아난 박모(42)씨 등 4명은 지명수배됐다. 검찰 관계자는 "조선족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에서 신분세탁 귀화자가 114명이나 적발됐다"며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이 전체 140만 명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신분세탁 사범은 1,400여명을 족히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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