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르르 떨리는 거수경례… 6·25 용사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한국전쟁이 끝난 지 내년이면 60년, 전쟁을 겪은 세대조차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해마다 6ㆍ25가 다가오면 이런저런 행사가 열려 그때를 돌아보지만, 시골 마을의 허름한 정미소에 걸린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의 사진을 보니, 강산이 여섯 번 바뀐 세월의 풍상을 새삼 실감한다. 눈도 침침하고 귀도 어두운 어르신들이 기운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경례를 붙이고 있다. 열댓 걸음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코딱지 만한 전시장에 거수 경례하는 모습으로 찍은 26명의 독사진이 걸렸다. 팔팔하던 청춘은 온데간데 없고 여든 안팎 노인이 된 이 분들은 전북 진안군 마령면에 사는 6ㆍ25 참전용사들이다. 사진마다 밑에 붙어 있는 참전용사증, 상이군경 회원증, 국가유공자증, 서기가 아닌 단기로 연도가 표시된 낡은 제대증이 참전 사실을 증명한다.
'할아버지는 베테랑'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 곳은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의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낡은 양철 지붕과 헐렁한 벽체가 정미소였음을 보여주는 작은 건물이, 옥수수가 시퍼렇게 자란 들판을 마주 보며 계남마을 입구 한적한 도로변에 얌전히 앉아 있다. 안에는 쌀을 찧느라 컨베이어 벨트가 돌던 도정기계가 남아 있다. 정미소, 구식 이발관, 새마을운동의 유산인 근대화상회(구멍가게) 등 사라져가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 김지연(64)씨가 다 쓰러져 가는 정미소를 사들여 개조해서 2006년 문을 열었다.
이번 전시 주인공인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22일 오후 개막식에 모였다. 과일과 떡, 삶은 돼지고기를 차린 작은 탁자에서 막걸리를 몇 잔 걸치자, 정창엽(79) 할아버지가 6ㆍ25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이 났을 때 중학교 2학년이던 정 할아버지는 학도병으로 가서 진안 일대 공비 토벌에 따라다니다가 총을 맞아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중핵교 3학년은 학도병으로 싹 몰아 넣고, 2학년 이하는 대충 큰 애들 추려서 데려갔지. 군번도 못 받고. 총 쏠 줄도 모르지. 어디서 배웠간디? 나중에 국군이 삼팔선을 밀고 올라가니까, 귀가증을 줘서 돌아왔는데, 죽을 뻔 했어. 눈이 허옇게 쌓인 정월 초이레였어. 밤에 이웃집에 갔다가 마을에 내려온 빨치산을 만난 기여. 빤스만 입혀 놓고 막 두들겨 패더라고. 그 놈들이 뺏은 옷 껴입느라 정신 없을 때 맨발로 겨우 도망을 쳐서 지서까지 갔지. 깨어보니 병원에 누워 있더라고. 정월 열하루가 내 생일인데, 생일상도 못 받고 죽을 뻔 했지."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유엔군 공습을 틈타 탈출한 이창성(85) 할아버지, 총상을 입어 야전병원에 옮겨졌을 때 피가 살과 옷에 엉겨 붙어 가위로 간신히 자르고 수술을 했다는 남금암(81) 할아버지 등 마령면 참전용사들은 저마다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다. 전공을 세워 훈장을 받은 영웅은 아니지만, 지극히 평범한 일개 병사로 참전했던 이들이 겪은 모질고 힘든 시절이 오늘의 뿌리임은 분명하다. 이 어르신들이 지금 국가에서 받는 보상은 한 달에 14만원 나오는 참전용사 보상금과, 10만원 안팎의 노령연금이 전부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매년 한국정부가 초청해 감사를 표시하지만, 우리 주변의 내세울 것 없는 참전용사들을 일부러 챙겨서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자리는 거의 없다.
모처럼 전시 주인공으로 초대받아 개막식에 모인 할아버지들은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 담엔 코가 짜그라지게 한 잔 혀"라는 말로 서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 다음이 언제일까. 김 관장이 이번 전시를 위해 이 어르신들 사진을 찍은 것이 지난 겨울인데, 그 사이 몸이 편찮은 분들이 생겨 많이 못 왔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기억은 달아난다. 전쟁의 기억도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9월 3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 진안군의 문화명소 계남정미소, 운영난에 고군분투
계남정미소는 진안의 명소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 개막식이 열린 22일도 경기 양평에서 공무원들이 보러 왔다. 마을을 살리는 문화공간으로 꼽혀 여기저기서 찾아온다.
하지만, 운영은 어렵다. 김지연 관장이 주머니를 털어 꾸려간다. 지난해까지는 상근자 인건비를 조금 지원 받아 겨울만 빼고 매일 열었지만, 그게 끊어져 올해부터는 주말(금, 토, 일)에만 연다. 이날 김 관장은 직접 차를 몰아 할아버지들을 모셔 오고 모셔다 드렸다. 전시 기획하고 마을 돌아다니면서 자료 모으고 사진 찍고 인화하고 팸플릿 만드는 것까지 혼자 해왔다. 하도 힘들어서 문을 닫을 생각도 했다.
“군이나 면에서 할아버지들 모셔 오는 것 정도라도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전주에 사는 김 관장은 진안 사람이 아니다.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정미소가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다가 계남정미소를 사서 공동체박물관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의 빛 바랜 흑백사진, 동네 할머니들의 보따리, 인근 수몰지구 폐교의 졸업앨범 같은 소박한 것들 것들을 모아서 전시를 해왔다. 처음엔 외지 사람이라고 떨떠름하게 보던 마을 주민들이 이제는 친한 이웃이 되었다.
지인들은 고군분투하는 김 관장을 안타까워 한다. 개막식에서 만난, 이곳에 자주 놀러 온다는 한 스님이 말했다.
“계남정미소는 진안군의 재산이고 자랑거리인데, 군에서 그걸 몰라요. 참 아쉽죠.”
오미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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