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이재오,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심상정…. 대선주자 명단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이들은 과거 구로공단 인근 동네에 살았던 인연이 있다. 구로공단은 19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중요한 활동공간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10대 여공들은 '벌집'이라고 불리는 서너 평 쪽방에서 칼잠을 자면서 수출의 첨병역할을 했지만 열악한 근로조건에 신음했다. 유급휴일과 월차, 생리휴가는 물론이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소설가 신경숙은 열다섯 나이로 구로공단에서 일명 '공순이'로 일하던 당시를 에 옮겼다. 벌집에는 수십 가구가 사는 데도 화장실은 달랑 한 개였고, 저녁마다 동네 전체에 연탄가스가 가득했다. 밤늦게 옆방에서 라면이라도 끓이면 그 냄새가 쪽방촌에 진동했다.
■ 가발ㆍ봉제공장들로 꽉 차있던 구로공단은 정보기술ㆍ벤처 중심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벨리)로 탈바꿈했다. 패션타운과 초고층 아파트형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구로공단 배후지역도 변화해 갔다. 여공들의 거처였던 벌집촌은 중국동포 밀집지역이 됐다. 공단이 해체되면서 여공들이 떠나자 90년대 초반부터 중국동포들이 둥지를 틀었다. 가리봉시장 주변 '연변거리'에는 양꼬치, 초두부, 개고기, 소배필(소삼겹살) 등 조선족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구미를 돋운다.
■ 각계 인사들이 구로공단 지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기념관으로 만드는 '구로공단역사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공단 지역 곳곳에 사료 전시관이나 교육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벌집이나 당시 공장 건물 등 구로공단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우선 사들여 체험관으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국인이나 중국동포나 가릴 것 없이 이 곳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비정규ㆍ저임금ㆍ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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