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60여명은 21일 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전날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듣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이들은 "검찰은 비리의 원흉인 금융감독원 간부 등을 처벌하지 못했다"며 한 서린 발언을 이어갔다.
월남전에 파병돼 모은 돈을 저축했다가 다 날렸다는 한 60대는 "금감원 간부들이 정권 실세들과 함께 저축은행 비리를 눈감아줘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건 국정조사를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벌 없이 저축은행 대주주의 개인비리를 밝혔다고 자랑하는 검찰은 도대체 어느 나라 검찰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검찰이 저축은행 3차 수사를 통해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 대주주 4명과 은행 관계자 5명, 전직 국세청 직원 1명을 기소한 것은 이들에게 부실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검찰 입장에서는 이 같은 비난이 억울할 수도 있다. 검찰은 대주주들의 비리를 우선 수사했기 때문에 이번 수사결과 발표에 금감원과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 내용이 없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계 고위직들의 업무상 과실과 불법 로비 등은 여전히 수사 대상"이라며 "수사 속도가 더딘 건 사실이지만 뚜벅뚜벅 실체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항변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과연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을 금감원과 정권실세에게 물을 의지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지난해 5월부터'부실 저축은행으로부터 퇴출 무마 관련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수사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 이 전 의원의 이름만 나와도 '확인 불가'를 외치던 검찰은 올해 3월에 와서야 "이 전 의원과 관련된 의혹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 전 의원, 금감원 간부 등 거물급 인사들의 혐의를 밝혀내는 게 쉽겠느냐"며 권력 앞에 약한 모습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저축은행 비리로 "자식과 같은 생돈"을 날린 피해자들은 부산과 광주 등지에서 전세버스까지 대절해서 상경,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피눈물에 대답하는 것은 검찰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책무이다. 7월15일까지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매일 밤샘농성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검찰은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것으로 답해야 한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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