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아파트의 건축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행정심판 결정이 처음으로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2일 "LH가 '분양 받은 아파트 건축원가를 공개하라'는 이모씨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재결했다. 재결은 행정심판 청구에 대한 판단으로, '행정기관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결정이 나오면 법원의 판결처럼 해당 행정기관은 신청인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권익위에 따르면 LH가 시공한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의 한 아파트를 분양 받은 이씨는 "분양가격과 실제 건축원가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고 싶다"며 LH에 아파트 건축원가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LH는 공개를 거부하고"건축원가는 오랜 기간 축적된 사업상 노하우를 담고 있으므로 경영상 비밀"이라며 "공개되면 기업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권익위는 "LH는 국민주거생활 향상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인데다 해당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으로 분양 팸플릿에 항목별 분양가가 이미 공개된 만큼 건축원가를 경영상 영업비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LH가 짓는 아파트 전체의 건축비 공개가 아니라 청구인 본인에 대한 정보공개에 그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경우 거품 논란을 빚고 있는 민간 아파트의 건축비 부풀리기 관행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익위 관계자는 "LH가 공공택지에 짓는 아파트의 대부분이 같은 방식으로 분양 공모를 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이 민간 아파트의 건축비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건축비에 대한 쟁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서울 수도권 일대 아파트의 시세가 분양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LH와 연관된 건축원가 공개 소송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경기 고양 풍동, 일산 2지구, 화성 봉담 등 3곳은 대법원 판결로 건축원가 공개가 확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LH는 건축원가 공개 소송을 최대한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지연 전략을 펴고 있다. 건축원가가 공개되면 세부 인건비나 금융비용 등 민감한 항목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과거 참여정부가 추진하던 건축원가 공개가 관련 업계의 압력에 밀려 무산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권익위 결정으로 유사한 법적 다툼이 더 확산될 수 있다"며 "다만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상한제로 이미 아파트 건축비의 상당 부분이 투명화돼 있어서 건설업계에 미치는 직접적인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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