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정치스캔들' '언론이 권력을 상대로 거둔 최대의 승리'
워터게이트 사건이 17일로 40주년을 맞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17일 괴한 6명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전국위원회(DNC) 본부에서 도청장치를 손보다가 붙잡히면서 시작됐다.
40년이 흘렀지만 워터게이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형 권력형 비리에 '게이트'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도 워터게이트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를 정확히 아는 사람 역시 드물다.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DNC 침입에서부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74년 8월 9일)까지 2년 2개월 동안 이어진 복잡한 정치적 사건을 뭉뚱그려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숱하게 회자되다 보니 와전(訛傳)된 점도 많다.
BBC방송은 16일 '워터게이트를 둘러싼 신화와 오해'를 소개하며, 로버트 레드포드(밥 우드워드 역)와 더스틴 호프먼(칼 번스타인 역)이 워싱턴포스트(WP) 기자 역을 맡은 76년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에 나온 일부 픽션이 오해를 부추겼다고 전했다.
오해 하나: WP가 닉슨 정권을 무너뜨렸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WP가 워터게이트 침입과 백악관의 연루 관계를 최초 보도한 것은 맞지만, 닉슨 하야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특별검사와 상ㆍ하원의 조사, 연방대법원의 판결이었다. 특히 73년 상원 청문회에서 닉슨의 증거인멸 시도를 녹음한 테이프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워터게이트의 본질은 불법 침입에서 닉슨의 진실 은폐 문제로 옮겨졌다. 닉슨에게 테이프 제출을 명령한 것은 대법원이었다.
오해 둘: WP는 워터게이트의 숨겨진 진실을 발굴했다
이것도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6월17일 워터게이트 불법침입은 사건 발생 후 몇 시간 만에 모든 언론에 보도됐다. WP도 처음에 이 사건을 경찰발로 보도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의 보도 역시 숨은 제보자 '딥 스로트'의 결정적 증언에 상당 부분 의지했다. 이후 딥 스로트의 신원은 비밀로 남아 있었으나,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사망하기 3년 전인 2005년 스스로 딥 스로트였다고 자백에 세상에 알려졌다.
오해 셋: 딥 스로트는 '돈을 추적하라'고 조언했다
"돈을 추적하라"는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명대사다. 영화에서 딥 스로트는 우드워드를 만나 침입자들이 받은 돈을 추적하면 사건 배후를 알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된 것이다. 실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딥 스로트 조언 없이도 이미 돈의 흐름을 추적하던 중이었다.
오해 넷: 기자들의 생명이 위협받았다
영화의 긴박하고 은밀한 분위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회고록에서 "정부가 우리를 도청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취재 중 가장 심리적 압박을 느꼈던 점은 취재 무마 위협이 아니라 "백악관의 끝없는 사실 부인"이었다고 토로했다.
오해 다섯: 워터게이트 이후 언론학 지망생이 늘었다
70년대 미국에서 저널리즘 관련 학과가 인기를 얻은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워터게이트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오비이락(烏飛梨落)적인 분석이다. 60~70년대는 미국에서 여권이 비약적으로 신장한 시기다.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큰 폭으로 늘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언론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72년 언론학 지망생은 이미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었다.
과소평가된 워터게이트의 여인들
두 기자가 주연, 닉슨이 악역, 딥 스로트가 결정적 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제목처럼 주요 인물이 모두 남성이다. 그러나 거대한 음모가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실제 역할은 과소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닉슨 재선위원회(CRP)의 회계담당자 주디 호박은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게 CRP 내부에서 사건 관련 서류가 고의적으로 파기됐음을 제보하는 등 취재에 결정적 도움을 제공했다. 당시 CRP 자금 관리자였던 휴 슬로언의 부인 데비는 두 기자를 집으로 초대해 남편이 관련 정보를 제보하도록 조언했다. WP의 여기자 매릴린 버거는 백악관 관리와의 사적인 대화에서 들은 내용을 우드워드 등에게 넘겨줘 취재에 도움을 줬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