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설 경우를고려해 그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안 교수가 내건 슬로건 '상식', '원칙', '소통', '나눔'의 개념 속에는 그의 정치철학이 담겨있다. 즉 그는 산업사회를 거쳐서 후기산업사회로 깊숙이 진입해 있는 오늘날의 한국적 가치를 사실상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치학자들은 산업사회와 후기산업사회를 구별해서 정치현상을 논의한다. 이들은 국가사회의 경제활동인구중 50% 이상이 3차 산업, 즉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면 그 사회는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했다고 본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연보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1995년 이미 후기산업사회가 되어 있다. 하지만 2011년에 와서야 후기산업사회의 정치현상들이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남북한의 냉전상태로 인해 그 표출이 늦어진 때문인 것 같다.
산업사회에서는 모두가 취득적 가치를 추구하다보니 정치이념이 판을 치게 된다. 중요한 정치이슈로는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기업투자, R&D, 경상수지 등이다. '보수'와 '진보'의 접근방식이 크게 다르다.
후기산업사회에 진입하면 이 사회는 물질적 결핍을 극복하면서 '보수' 대 '진보'니 하는 이념적 호소력이 약해져서 '이념'이 아닌 '상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게 된다. 중요한 정치이슈로는 사회복지, 환경오염, 인구과밀, 교통혼잡, 물가, 교육, 보육, 노인복지, 청년실업 등을 들 수 있다.
산업사회의 기성정당들은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서 싸우다 보니 후기산업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지금까지의 관성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도 결핍되어 있다.
안 교수는 '원칙'이 무시되고 '소통이' 불가능한 한국의 산업사회를 통렬히 비난한다. 정부와 여당의 친대기업 정책으로 양극화가 심화돼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윗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정의, 즉 합법성과 도덕성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통탄하며 '원칙'을 바로 세우자는 목소리이다. 그가 말하는 '나눔'의 개념을 복지사회의 씨앗으로 삼겠다는 의지이다.
민주통합당이 안 교수를 유인하는 제스처도 여러번 보아왔다. '공동정부'를 제기하면서까지 그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철학이나 노선, 정책방향 등을 고려하지도 않고 정권을 잡으려고만 하는 노력은 그야말로 산업사회의 기성정당들이 하는 전형적인 정치행태이다.
민주당은 집회, 시위, 파업. 데모 등의 선동정치에 능숙하다. 후기산업사회는 과학∙기술적, 전문적, 행정적 문제해결이 요구되는 사회이다. 안 교수는 토론에 의한 문제해결방식을 선호한다. 강연, 토크 콘서트, 질의응답과 같은 부드러운 대화와 설득이 그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문제의 경우 민주당은 대체로 사회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고 때로는 포퓰리즘이란 비난도 받는다. 그러나 안 교수의 '나눔' 의 개념은 빼앗아서 나누어 갖는 방식이 아니라 대체로 박애주의적 접근이다. 미국의 자선사업가 빌 게이츠를 만나고 온 것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안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반미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해서 시종일관 침묵함으로써 침묵하는 다수의 편에 섰다. 침묵하는 다수는 FTA를 찬성한다. 장사를 하든 외교를 하든, 반미를 외쳐 득볼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오늘날 국제정치의 상식이 아닌가. 안 교수는 지난 3월 4일 침통한 표정으로 탈북자 북송 반대시위 현장에 나타났다. '악의 왕국'을 견제하고, 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른바 '종북좌파' 세력과 연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지도자로 보인다. 결국 그는 대선에 나오더라도 산업사회의 기성 정당과 연대하지 않고 후기산업사회의 유권자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택할 것이다.
이강석 국방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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