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고양이 호텔> , <옷의 시간들> 을 낸 신인작가 김희진씨가 첫 소설집 <욕조> (민음사 발행)와 세 번째 장편 <양파의 습관> (자음과모음 발행)을 동시에 냈다. 몇몇 단편소설을 문예지에 연재하고 이를 묶어 2, 3년 만에 소설집을 낸 후, 첫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관행화된 국내 문단에서 장편 위주로 활동하는 김씨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쌍둥이 언니인 장은진(본명 김은진)작가와 광주에서 함께 글을 쓰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작품을 발표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양파의> 욕조> 옷의> 고양이>
첫 소설집 <욕조> 는 2007년 등단 이후 김씨의 작품 변화를 볼 수 있다. 소설집 맨 처음에 실려 있는 독특한 알레고리의 단편 '혀'는 작가의 등단작.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혀가 사람들의 언어를 빼앗아 입 밖으로 달아난다는 이야기. 혀는 날개가 달린 새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사람들의 말을 옮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혀가 아닌 다른 혀를 삼켰다가 죽는 사람, 혀를 되찾기 위한 강도짓을 하는 사람 등 갖가지 사건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애초부터 언어 장애가 있었던 주인공뿐.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배제된 주인공에게 이 사태는 비로소 정의가 구현된 세상이다. 욕조>
소설집에는 욕조에서 잠을 청하며 불면증을 달래는 여자를 다룬 '욕조', 해바라기 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하루 종일 해바라기가 보이는 창가에 앉혀놓고 고문하는 '해바라기 밭', 붉은 색을 먹어 치움으로써 붉은 색과 관련된 모든 의미를 세상에서 삭제해버리려는 사람을 다룬 '붉은색을 먹다' 등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 8편이 실렸다.
소설집에서 작가의 문학적 변화상을 가늠할 수 있다면, 세 번째 장편소설 <양파의 습관> 에서는 김씨의 최근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단편 속 주인공처럼 인위적이고 독특한 캐릭터의 인물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펼쳐지는 이 소설은 주인공 장호의 눈을 통해 이 인간 군상 하나하나를 엮어낸다. 양파의>
여기, 누구라도 내다 버리고 싶을 것 같은 가족이 있다. 한때는 발레리나였지만 지금은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워 하루의 대부분을 두 대의 텔레비전을 보며 끊임없이 먹어대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거구의 식탐 대마왕 엄마, 엄마의 발레리나 시절 팬이었고 여전히 식탐대마왕 엄마를 사랑해 아들들에게 설거지를 시키는 아빠, 스무살도 안 돼 한 가정의 가장이 된 형. 장호는 이런 가족이 지긋지긋해 틈만 나면 옥상으로 도망가기 일쑤다. 장호는 옥상에서 자신의 가족처럼 파란만장한 사연의 보리를 만난다. 연극배우가 꿈이라면서 말할 때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부끄러워하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깎은 손발톱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으는 희한한 수집벽이 있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장호는 이 이상한 여자와 이웃들의 소란과 갈등, 가족의 사연을 시시콜콜 나누며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위로 받는다.
두 작품집의 공통점은 자신의 상처나 아픔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극복해 가는 이야기라는 것. 첫 단편집이 "특별한 언어 세계의 특별한 상상력"(평론가 강유정)을 보여준다면, 장편소설은 보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잔잔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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