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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김씨는 일용 잡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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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김씨는 일용 잡부다

입력
2012.06.2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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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일용잡부다. 김씨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 비오는 날은 빨간 날, 휴일인 것이다. 요사이는 경기가 더욱 안 좋아 휴일이 따로 없다. 게다가 며칠 씩 임금이 밀리는 날도 있으니 그냥 하루하루 겨우 산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고된 노가다 일이 끝나면 김씨는 유일한 안식처인 고시원 쪽방으로 기어간다. 곰팡네 나는 방 벽에 녹초가 된 몸을 기대어 낡은 TV를 틀어놓고 막걸리 몇 잔으로 하루를 닫는다. 목으로 흐르는 걸죽한 막걸리의 감촉을 느끼는 게 그의 유일한 휴식이다. 눈이 감기고 잠이 오는 중에도 무심결에 알람시계를 아침 여섯시에 맞춰 놓는다. TV가 켜져 있으면 잠이 더욱 잘 온다.

김씨는 IMF때 아내와 헤어져 혼자된 지 10여 년을 이와 같이 노동과 술로 지내왔다. 그런 김씨에게도 가끔씩 특별한 멈춤이 있다. 헤어진 아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다.

철이 들면서 점점 서먹하고 대면 대면한 관계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밥을 먹는 단 몇 시간만으로, 김씨의 삶은 말소된 주민등록증이 재 발급된 것처럼, 거기에 찍힌 자기의 모습과 이름이 분명히 보이는 것처럼 존재감이 생긴다.

뒤통수 한 구석이라도 나와 닮은, 내 피붙이가 커가는 걸 지켜보는 일이 김씨의 유일한 낙이다. 잠깐이라도 자식을 만나고 오면 김씨는 노동으로 패인 주름이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김씨에게 허락되지 않는 희망이 되었다.

아내가 재혼을 한 후로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더 이상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아내도 없이,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도시에 등 떠밀린 낙오자로 살아 간 지 오래. 삶에 희망이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 그저 몸이 허락하는 한 하루를 꾹 꾹 살아가는 것 만이 더 이상 시골의 늙은 부모에게 불효하지 않는 것이라 믿고 있다. 경기 탓인지, 며칠 째 일이 끓긴 요즘 술이 절실하지만, 주머니가 텅 빈지 꽤 되었다.

어제 밤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막걸리 생각이 간절해 발길을 동네 슈퍼로 옮긴다. 막걸리 외상이 더 이상 안 된다고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악다구니를 쓴다.

김씨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아주머니가 입에 거품을 물고 귀청이 떨어지게 소리를 지르며 문전박대를 한다.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분노가 끓어 오른다.

김씨의 울화는 가난 때문에, 아이 때문에, 아내 때문에, 뼈를 녹이는 고된 노동에도, 미래 없는 당일치기에도 끄떡없었는데, 왜 그 깟 막걸리 외상이 안 된다니.

슈퍼 아줌마의 무시하는 눈빛과 거품 오른 말 몇 마디에 미쳐 발광을 하게 되었는지 김씨 자신도 모른다. 들여다보면 은퇴한 늙은 권투선수처럼 가슴 속은 멍투성이 일 것 같은 이 불쌍한 여자에게, 외상술이 더 독한 것도 아닌데 김씨의 몸이 점차 난동을 부리고 있다.

그 원인모를 원인의 고통의 크기만큼을 증명하려는 듯 김씨의 몸부림은 점점 커져가고 결국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몰려들고 말았다.

결국 김씨는 주폭이라는 죄목으로 슬리퍼 차림으로 경찰들에게 끌려간다.

경찰들은 주폭 매뉴얼에 맞춰 어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여 김씨를 진정시키고 조서를 꾸민다. 신상조회도 한다. IMF 경제사범. 기억도 희미한, 수년 전 불참한 동원훈련으로 인한 향군법 위반. 이혼, 무직, 56세, 현재 주거불명. 김씨에 관한 정보들이 컴퓨터 화면에 가득하다. 경찰서 한쪽에 먼지를 뒤집어 쓴 감시카메라가 보이고 카메라 모니터엔 헝클어진 머리의 김씨가, 김씨 자신이 나오는 모니터를 보는 것이 보인다.

오늘 하루는 유치장에서 특별한 외박을 해야 하는 김씨다. 갑자기 배에서 허기진 신호가 느껴지는데 추리닝 바지에서 휴대전화가 울려온다. 경찰관이 받아 보라는 고개 짓을 한다. 김씨는 수갑 찬 손으로 힘겹게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데 액정위로 빌어먹을 자식놈의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다. 실없는 웃음을 뒤로하고 김씨는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멀리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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