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진을 좋아하게 될줄이야. 정확히 말하면 좋아한다기보다 남진의 재발견이라고해야 맞다. 그는 내가 겨우 걸을 때 가수가 됐다. 남진의 초기의 히트곡 '가슴아프게'는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왔고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마오',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등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들은 노래들이다. 그런 내가 라디오 중견 피디가 되었는데도 그는 계속 히트곡을 내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개그맨 엄용수에게 전해들은 일화 한가지. 천하의 남진이 작은 도시의 작은 행사에서도 노래를 하는 것이 보기에 좀 그래서 넌지시 물어봤단다. 왜 이런 무대까지 오시느냐고. 그랬더니 남진은 "나와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팬이 있으면 그 무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남진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된 이야기다. 라디오 공개방송의 작은 무대라고 온갖 까탈을 다 부리는 가수를 많이 봐와서 그런지, 남진 같은 대 스타가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남진은 정말 대단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텔레비전만 틀면 남진이었다. '역사적 라이벌' 나훈아가 있었지만. 내 기억속에는 남진이 더 스타였다. 남진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다.
남진은 가수로서도 대단했지만 영화도 많이 찍었기 때문에 더 많이 얼굴을 봤었다. 게다가 상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나훈아에 비해 남진이 훨씬 화려하고 밝고 뭔가 으?X으?X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더 스타였다고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남진도, 나훈아도 좋아지지가 않았다.
남진, 나훈아의 극성 여성팬들의 모습도 싫었다. 두 사람의 노래는 젊은 우리의 노래가 아닌 아줌마, 아저씨, 부모님들의 노래였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어느날, 엘비스 프레슬리와 똑같은 복장으로 나타난 남진을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 요즘 말로 하면 '헐!'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당시엔 남진의 무대가 엄청난 화제였지만 어린 나에겐 남진과 영영 멀어진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오랜 공백기가 있었다.
나는 사실, 그러다 말줄 알았다. 그러다 만다해도 우리 가요사에 '남진'이라는 이름은 영원히 남았을거다. 그랬는데 그가 돌아왔다.
나는 남진의 '빈잔'을 발표된지 거의 10년 후에서야 좋아하게 됐다. 어렸을 때는 '박춘석'이라는 작곡가를 잘 만난, 그저 잘생긴 가수였다고 생각했는데,'빈잔'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어? 노래를 참 잘하는 가수였구나. 정말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나서 부르는 남진의 '빈잔'은 그 깊이와 진정성이 확 느껴졌다. 내가 더 놀라게 되는 건 1993년 '내 영혼의 히로인', 2000년 '둥지', 2002년 '모르리', 2005년 '저리가', 2008년 '나야나' 등 꾸준히 히트곡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한 성적이다. 물론 70년대의 남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빈잔'수준의 히트는 히트라고 할 수도 없다. 그만큼 예전의 남진은 절대지존이었다. 그가 예전에는 홈런을 쳤다면 이제는 안타 정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도 타석에 들어선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는 지금 60대 중반이다. 그런데도 삼진아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요즘 텔레비전에서 노래를 하거나 인터뷰하는 그를 보면 참 친근하게 느껴진다. 폼잡지 않고, 큰욕심 내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노래와 무대와 팬을, 그리고 인생에 대해 감사하며 즐기는 것 같아서다.
'영원한 오빠'남진. 젊어서 그가 흉내냈던 프레슬리보다 그는 더 행복한 가수, 더 멋진 가수임을 이제 나는 알았다.
조휴정ㆍKBS해피FM 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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