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켜두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선풍기 질식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진 얘기. 언론보도도 오랫동안 부지기수로 나왔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선풍기 괴담(Fan death)’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을 조롱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는 ‘선풍기 괴담’에 대해 “밀폐된 방안에서 선풍기를 켜두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한국의 미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유튜브에는 ‘fan death’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두 주인공이 ‘선풍기로 인해 사망했다’는 한국기사를 비웃는 장면으로 시작해 살인무기로 변한 선풍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마침내 왕이 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동영상까지 올라와 있다. 이 동영상은 46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이 봤다.
그러면 실제는 어떨까. 산소 부족이나 호흡 방해, 저체온증이 원인으로 보이는 선풍기 질식사 설에 대해 의학전문가들의 입장이 엇갈린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밀폐공간에서 선풍기를 켜두면 방 자체 온도는 오히려 올라가게 되는데다 선풍기가 산소를 소모하는 것도 아니어서 저체온증이나 산소 부족은 말이 안 된다”며 “또 선풍기 바람에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라면 승용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숨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변사체 옆에 선풍기가 켜져 있으면 유족들은 선풍기 질식사라고 굳게 믿은 채 부검도 하지 않았다”며 “이런 경우 ‘선풍기로 인한 사망’으로 보도돼 왔고 국민의 믿음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송모 교수는 “문을 닫은 채 선풍기를 얼굴 쪽으로 향하면 진공상태와 비슷하게 돼 호흡곤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칼크스타인 미 마이애미 대학교 교수는 위키피디아에서 “밀폐된 곳에서 선풍기를 틀면 오히려 방안 열기가 사람에게 집중돼 체온이 상승하고 이는 심장마비나 뇌졸중,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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