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강력한 힘이 있다.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프로그램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이를 증명한다. 마약이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선물했다. 첫 선을 보인지 37년이 된 ‘엘 시스테마’는 세계 20여 개국에 퍼져 30만명이 넘게 가입해 있다. 시작은 11명이 전부였고 보잘것없었지만 음악의 위대함은 아이들을 변화시켰고,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조익현(50)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장신대 지휘과 겸임교수는 한국판 ‘엘 시스테마’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다. 불우청소년들을 돕는 장학재단인 ‘행복나무플러스’(서울 관악구 봉천동) 6년째 운영하고 있다.
조 교수는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의 성격부터 설명했다. “국내엔 버려진 6~7명의 아이들을 가정에서 돌봐주는 ‘그룹홈’ 같은 시설이 많습니다. 그룹홈협회와 손잡고 이런 아이들 30여명을 뽑아 음악을 가르치고, 또 대학을 가려는 아이들에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재단 설립과 동시에 ‘행복나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합창단’을 만들었다. 국내외 전문 음악인들이 참여해 연주를 맡고, 불우청소년들은 노래로 호흡을 맞춘다. 매년 ‘삶과 나눔 콘서트’를 열고 있는데, 벌써 10회 정도의 공연을 했다. 11월에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공연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 전액은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의 입학금으로 지원된다. 음악 교육과 장학 사업을 절묘하게 조합한 형태다. 지난 학기엔 이렇게 모인 1억원을 14명에게 지급했다.
조 교수가 장학사업을 꿈꾼 건 오래됐다. 서울대 작곡과와 대학원 음악학과 출신인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미국 북텍사스주립대에서 합창지휘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도 장학금 수혜를 입었다. “장학금 받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꼭 사회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주도적으로 연주회를 열어서 한국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모았습니다. 이 때부터 장학사업을 구상했던 것 같아요.”
그의 장학사업은 최근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과 GS샵이 만든 ‘무지개상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발탁됐다. ‘무지개상자 오케스트라’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10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목표다. 조 교수는 이들에게 악기 레슨를 하거나, 이론도 가르치고 있다. 다음달에는 학생들을 위한 음악교재를 발간한다. 이들이 보다 쉽게 음악에 다가갈 수 있도록 편곡한 곡들이 담겨 있다.
향후 계획을 묻자 “불우청소년들을 위한 ‘자립관’건립”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하는 게 현실. 300만~500만원의 자립금이 지급되지만, 방 한칸도 얻을 수 없다. 나쁜 길로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시설을 나온 아이들이 자립관에서 삶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해요. 두 번 버려지는 심정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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