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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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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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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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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으로 만든 파이 얼마에요?" "나뭇잎 돈 두장 내세요"

"파이 얼마에요?" 멀리서 놀던 동호(7)가 민선(7)이에게 달려와 묻는다. "천원이요." 동그란 그릇 안, 흙으로 만든 파이 위에 꽃과 나뭇잎을 장식한 민선이의 대답이다. "스파게티 해먹게 면도 같이 주세요." 동호는 나뭇잎 두 장을 민선이에게 내밀고는 기다란 풀잎과 흙 파이를 가져갔다.

또래 아이들이 흔히 하는 가게 놀이지만 아이들이 주고 받는 것은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니다. 그릇을 빼곤 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뭇잎과 꽃잎, 그리고 흙이다. 가늘고 길쭉한 것, 손가락처럼 생긴 것, 타원형에 가까운 것 등 모양도 제각각인 나뭇잎은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면이나 파가 되기도 하고, 돈이 되기도 하고, 파이 재료가 되기도 한다. 친구들이 몰려와 흙 파이가 떨어지자 가게 놀이를 잠시 쉬어간다.

어떤 아이들은 두 나무 사이에 걸친 해먹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시종일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각자 놀이에 몰두하다가도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곧 다가와 어울리고 또다시 다른 놀잇거리를 찾는다.

선생님의 지시나 규정된 놀이 방식, 엄격한 규칙이 없어 여백이 많아 보이는 이 곳은 그래서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숲이다. 자연의 품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이 유독 밝다. 자기가 먼저 하겠다며 다투는 아이들도 없고, 선생님한테 이르겠다며 달려가는 아이도 없다. 물론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도 없다. 어울리고, 만들고, 웃고, 떠든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반쯤 찾아간 이 곳은 숲이 곧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인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이다. 유치원 건물도 없다. 인천 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야트막한 청량산이 아이들의 유치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은 주 5일 유치원에 가듯, 청량산에 오른다. 청량산 입구에는 '숲유치원 교육 시간에는 장소를 우회해서 지나가달라'는 협조문이 붙어 있다.

숲이 교실인 이 곳은 산림청이 2009년 숲유치원 모델로 국내 최초로 지정한 곳이다. 숲유치원은 그해 여름 개원해 올해로 만 3년째 운영 중이다. 숲유치원의 모범 사례로 꼽혀 수업을 개방하는 매주 금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유치원 교사와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수십 명씩 찾아온다.

우리 나이로 6~7세 아이들 25명이 3명의 교사와 함께 매일 산을 오르내린다. 아침 8시 30분쯤 청량산 입구에 모였다가 2시쯤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셔틀버스가 없어 부모가 아이를 데려다 주고, 간식도 챙겨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한번 다녀본 아이들은 동생까지 데려올 정도.

"처음부터 아이들이 숲을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몇몇 아이들은 '교실은 언제 들어가요?' '왜 매일 걸어요?'라고 묻기도 했구요. 흙 위에 앉자고 하면 옷이 더럽혀진다며 머뭇거렸거든요. 그러던 아이들이 매일 숲에 오면서 이곳에 사는 생물에 먼저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개미, 잠자리, 개구리, 애벌레, 다람쥐의 소리와 움직임에 민감해지더니 점점 더 숲에 대해 알고 싶어했죠." 김은숙 숲유치원 원장의 설명이다.

부모나 교사의 지시와 허락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이거 만져도 돼요?" "줄 안 서도 돼요?"라는 말도 참 많이 했다고. 그러던 아이들이 이젠 선생님을 친구처럼 반길 뿐 허락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찾지는 않는다. 스스로 종이를 찾아 그림을 그리고, 각자 메고 온 배낭을 챙기고, 진흙을 반죽하며 논다.

얼마 전엔 집을 짓겠다며 산에 있는 나무토막을 모아다가 묶기도 했고, 개울가를 건널 때 나무토막 여러 개를 엮어 건너기도 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버려진 나무로 한쪽에 가방 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숲에 의지하고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여느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한글과 숫자를 배우고, 만들기와 그리기도 하며, 유치원이 끝나기 전엔 옹기종기 모여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도 듣는다. 실내 유치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다는 것뿐.

만물이 깨어나는 봄에는 생명의 탄생과 계절의 순환을 배운다. 새싹, 봄꽃, 나비나 벌 같은 곤충을 사진이 아닌 실제로 관찰하면서 그들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본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엔 물과 흙이 주제다. 비가 왔을 때 숲이 물을 어떻게 저장하는지 배우고, 흙 놀이를 통해 톱사슴벌레 애벌레 같은 흙 속의 생명체를 알아채게 된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비 오는 날도, 흙바닥에 앉는 것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나무에 단풍이 지고 도토리가 맺히는 가을에는, 나무가 곧 선생님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 산에선 노래하는 새들이 주인공이다. 청량산을 하얗게 덮는 눈은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다.

"사계절의 변화를 숲에서 온전히 느끼며 체험하죠. 비가 내리면 우비에 장화를 신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외투를 껴입고, 눈이 내리면 모자와 목도리와 장갑을 하고 숲으로 갑니다."

이명환 숲유아교육연구소 소장(인천대 유아교육과 교수)은 "나쁜 날씨는 없어요. 다만 나쁜 복장이 있을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독일에서 숲유치원을 접한 후 국내에 처음 이를 도입했다. 독일에서는 대안교육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던 숲유치원이 1993년 정식 교육 커리큘럼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제 2,000여 곳에 달할 정도다. 국내에도 관심을 갖는 기관이 불과 1~2년 새 100여 곳에서 900여 곳으로 크게 늘었다.

지속적인 숲 산책은 유대감의 경험을 넓혀주고 창의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연구 발표도 나와 있다. 실제로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에서 테스트를 해본 결과 원생들의 창의성과 집중력이 초기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다. 건강에도 좋다. '치유의 숲'이라는 말이 쓰일 정도로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냇가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면역력을 높여준다. 천식이나 아토피처럼 도시 아이들에게 흔한 질환이 이곳에서 말끔히 나은 아이들도 있다.

숲유치원의 올해 첫 졸업생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시사철, 또 매일같이 변화하는 숲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숲과 함께 자라난다. 숲에서 더불어 사는 삶 또한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아이들의 변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김은숙 원장은 "아이들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은 바로 자연임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 '숲유치원 프로그램' 전국서 활성화…지난해 숲 100여곳에 아이들 24만명 다녀가

1990년대 유럽에서 대안교육으로 숲유치원이 주목 받은 이후 국내에서도 민간에서 대안교육 혹은 생태교육의 일환으로 숲을 배움터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산림청이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북부지방산림청이 서울, 인천, 홍천, 춘천 등에 있는 6곳의 국유림에 숲유치원을 개소하면서부터다.

청량산에 둥지를 튼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도 이때 시작됐다. 그러나 산림청이 개소한 숲유치원 중 원생을 직접 모집하고 매일같이 아이들과 산을 오르는 방식을 택한 곳은 국유림 72곳과 지자체 공유림 38곳(2011년 기준) 중 이곳이 유일하다.

대부분의 숲유치원은 보육기관이 산림청 혹은 지자체와 1년 단위로 협약해 한 달에 두 세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국유림으로 찾아오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협약 없이 일회성 방문도 있다. 숲을 찾은 아이들은 국공유림의 숲해설가 주도로 수업을 받는다.

숲유치원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크게 늘어난 것은 2010년 이후. 북부지방산림청의 시범사업이 호응을 얻으면서 숲유치원을 개소한 국공유림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2011년 국유림 72곳에서 열린 숲유치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아는 18만 명, 서울, 대구, 부산, 인천, 전남, 강원 등 지자체 공유림 38개소에 참여한 유아 숫자는 6만여 명에 이른다.

7월부터는 '산림교육 활성화 법'에 따라 숲에 아이들이 뛰놀기 좋은 공간을 조성하는 유아숲 체험원과 산림교육을 할 수 있는 유아숲 지도사가 도입ㆍ시행되기 때문에 숲유치원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공유림에서 운영하는 숲유치원 프로그램은 주로 보육기관을 대상으로 신청으로 받는다. 산림청 포털사이트 '숲에온'(www.foreston.go.kr)에서 '숲유치원'으로 들어가면 각 지방산림청의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지자체 공유림의 숲유치원 문의는 해당 지자체의 공원 녹지과나 산림과로 하면 된다. 민간 숲유치원 정보는 숲유치원협회(051-510-7533)에서 얻을 수 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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