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원자력 관련법에 '안전 보장' 목적을 추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핵무장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안전 보장의 정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만큼 관련 문구를 삭제하지 않는 한 논란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일본의 핵무장이 북한, 이란 등 핵무기 개발을 추진 중인 국가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한층 더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중의원은 지난해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신설키로 한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치법을 20일 통과시켰다. 논란이 된 조항은 부칙 12조에 기술된 원자력기본법의 기본방침 규정에 관한 것이다. 당초 일본 정부와 민주당은 원자력 연구 및 이용을 '평화와 안전확보'를 위한 것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여야의 수정 협의 과정에서 보수우익 자민당이 안전 보장이라는 문구 삽입을 요구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추진 중인 소비세 증세안을 통과시키려면 자민당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민주당이 이를 내칠 수 없었던 사정도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당 부분 사전 조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게 된다. 협의 과정에서 아무런 이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과 법안 개정 내용을 국회 홈페이지에 띄우지 않은 것이 의심을 증폭시킨다.
절차상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논란의 핵심인 원자력기본법은 일본의 원자력 관련법을 통틀어 최상위법에 해당해 흔히 '원자력 헌법'으로 부른다. 하지만 일본 국회는 원자력기본법은 그대로 둔 채 하위법인 원자력규제위원회설치법 부칙에서 원자력기본법의 개념을 변경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법률이나 조례로 헌법 조항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절차상 문제가 있고 위헌의 소지도 크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에도 불구, 일본의 핵무장이 현실화하기에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일본은 현재 평화헌법에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를 규정하고 있고 1968년 1월에는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을 발표했다. 일본이 핵무기 보유를 위해서는 관련 법을 모두 바꾸기 위한 국민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파문이 확산되자 일본 정부는 문구 수정이 원전의 평화이용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21일 "원자력의 군사 전용은 없으며 비핵화 3원칙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원전담당장관도 "'안전보장'은 핵 확산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일본은 최근 무기수출 3원칙을 공식적으로 완화하고, 자위대가 42년 만에 도쿄 시내에서 무장훈련을 하는 등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 일본 지식인 단체인 '세계평화 호소 7인위원회'가 "실질적인 (핵의) 군사이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야마자키 마사카쓰(山崎正勝) 도쿄공대 명예교수는 "원자력기본법은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한 최초의 법"이라며 "철저한 논의조차 없이 기본방침을 변경한 것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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