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특정인의 태도가 논란이라는 글이 네티즌의 의견 또는 여론을 등에 업고 기사 형태로 뜬다. 어느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게스트가 일명 '국민 MC'로 추앙받는 이에게 불손했다. 어느 교수가 방송 인터뷰에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의 교생실습을 폄훼했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느 가수가 결혼을 발표했는데, 정황상 인기를 얻기 위해 거짓으로 병을 앓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기사 내용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중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동도 있고, 다소 무책임한 발언도 있으며, 좀 더 정교하게 의견을 피력하거나 처신했더라면 오해가 없었을 일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렇게 논란이라고 떠들어대는 일들 중에는 오히려 황색 저널리즘에 기꺼이 편승한 매스미디어가 애초 문제를 만들고 분란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렇게 해서 미디어 영향력이라든가 광고 효과라든가를 조금이라도 얻어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진짜로 사람들이 언짢아하고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안들 중에도 함정이 있는 경우가 꽤 된다. 정작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보거나 전체 맥락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방향에서 퍼져나가 실제야 어찌됐든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경우에 한정해서, 왜 이런 상황이 빈번해진 것인지 생각해보자. 가령 다른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뀌어서 그런 것일까? 또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상호 의사소통이 활발해진 시대에 사람들의 의사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기 때문일까? 혹은 탈 권위, 수평적 관계 선호, 개인화 경향과 더불어 누구나 비판할 수 있고 비판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만약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면 위와 같은 현상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관계가 임의로 편집되고, 좋은 의도가 나쁜 쪽으로 밀려 해석되며, 아주 작은 실수가 침소봉대돼 '여론'이라는 미명 하에 물어뜯기는 상황은 그 같은 이유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예컨대 정치적 올바름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병적으로 요구할 때 일어난다. 그것도 누구나에게 공평무사하게 들이대는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편견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나면서. 또한 현상 전체를 보지 않고, 현미경적인 시각으로 순간순간에 자의적으로 반응할 때 나타난다. 예전에 사람들은 이런 경우 말꼬리를 잡는다든가, 본말이 전도됐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누구나 그렇게 디테일에 매달리다 보니 굳이 그런 표현을 쓸 일도 없어진 것 같다.
기승전결의 통합적 사고가 재기발랄한 순간의 아이디어에 밀려 제 기능을 상실하고, 신뢰의 문맥이 효율적 정보의 우선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깨져나가면서 우리는 부정확한 세부에 집착하게 됐다. 또 도처에서 우리를 찍고 있는 폐쇄회로(CC) TV와 손쉽게 찍고 유포시킬 수 있는 인터넷 동영상 체제 속에서 나나 당신이나 외부 시선에 민감해지고 의심이 많아졌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불지불식간에 서로를 감시하고, 사실관계야 어떻든 결국 편집된 이미지가 사태를 결정한다고 믿게 됐으며, 누구나 불신하고, 작은 실수나 허점에 절대로 관대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는 사회적 학습을 통해서, 또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언행 한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 학습에 일관성이 없거나, 사회분위기가 현상들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특정 틀로 경직될 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극단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동시에 공격적이 된다. 손님 앞에서 물건에 극존칭을 쓰는 어느 판매원은, 한 사건의 단편만 보고 맘에 안 든다고 폭력적인 트윗을 날리는 나나 당신의 겉모습일지 모른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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