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성과도 굉장히 좋은 분이었는데 황망하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중소기업 담당 조모 부장이 실적압박을 견디지 못해 투신 자살한 다음날인 20일 SC은행 측의 반응이다. 은행의 성과주의 정책을 잘 따르는 듯 보였던 모범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뉘앙스였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했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목표치를 채워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 불안, 굴욕 등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은행만 모르는 것 같다.
경찰과 SC은행에 따르면 조부장은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자신이 담당하던 한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높아지자 중압감이 엄청났다고 한다. 게다간 작년 말 은행이 명예퇴직을 통해 임직원 830여명을 내보낸 탓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16시간 고강도 근무를 거의 매일같이 강행했다고 한다. 눈 앞에서 동료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표를 내고 동시에 성과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홀로 과도한 업무량을 버텨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은행들도 성과주의를 제1원칙으로 여기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3월 출범한 NH농협은행도 이달 말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적립식예금 좌수, 신규고객유치, 가계여신, 신용카드 신규발급 회원수, 채움사이버 예ㆍ적금 추진건수 등의 실적을 두루 평가해 상반기 우수 직원과 영업점을 선정하기로 했다. 국민은행도 영업이익 목표치를 초과한 점포에 보너스를 지급하는 특별 포상제를 시행 중인데 첫 평가 결과가 이달 말에 나올 예정이다. 그 외 은행들도 이달 말까지의 실적이 하반기 인사고가에 반영되는 탓에 상반기를 10여일 남기고 막판 실적 쌓기에 힘을 쏟고 있다.
물론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기업이 직원의 성과를 중시하는 걸 두고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쁘다고 평할 수 없고, 옳고 그르다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기도 어렵다.
하지만 회사와 직원이 윈윈하기 위해 도입한 성과주의가 성과 만능주의로 변모하고 급기야 퇴출 수단으로까지 쓰인다면,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되고 내부 경쟁이 과열돼 회사 전체로는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직의 중추인 간부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나.
현재 은행원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6시간으로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시한 한도(52시간)를 훌쩍 넘고 있다. 게다가 금융 당국이 수 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은행직원이 주어진 성과를 채우기 위해 자신이나 친지명의로 통장을 개설해 자기 돈을 예치하는 '자폭통장'은 관행이 된지 오래다. 당국이 단속에 나서면 자폭통장의 대상을 가족에서 친구로 옮기는 웃지 못할 숨바꼭질도 반복된다.
은행은 지금이라도 성과주의라는 미명 아래 살인적 업무강도와 편법ㆍ탈법으로 얼룩진 내부 경쟁을 멈추어야 한다. "직원이 행복해야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명제는 이제 상식이 된 경영이론이다.
강아름 경제부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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