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민주화 시위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84) 전 이집트 대통령이 한때 심장 정지 증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건강 이상설은 이집트의 정치적 혼란이 절정으로 치닫는 와중에 터져 나왔다. 16, 17일 첫 민선 대통령을 뽑는 결선투표를 치른 이집트는 21일 당선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집트 관영 메나통신은 19일 오후(현지시간) 수감 중이던 무바라크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해 군 병원으로 옮겨진 후 ‘임상적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무바라크의 심장 박동이 멈췄으며 심장충격기에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현지 의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AFP통신 등 외신은 무바라크가 이후 혼수상태에 빠져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AP통신은 다음날인 20일 보안 관리의 말을 인용해 무바라크가 인공호흡기를 뗐으며 심장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여러 기관이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바라크는 현재 의료진 15명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심장, 혈액, 뇌 등의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러나 무바라크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실제 건강 상태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그는 지난해 7월에도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위독설이 나왔지만 이후 법정에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바라크의 건강 이상설은 가뜩이나 어지러운 이집트 정국에 불확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집트는 첫 민선 대통령 선거 결과 발표를 앞두고 결선투표에 나선 후보들이 서로 승리를 주장하는 등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이집트 알아람 정치전략연구센터의 디아 라시완 연구원은 “매우 극적인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그는 “무바라크에게 자신은 영원한 존재이고 자신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며 “그는 후임자의 이름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선 대통령 발표를 앞둔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스런 국면이다. 결선투표에서 맞붙은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61)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크(71) 후보가 서로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집트 대선을 감시한 카터 센터를 이끌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결선투표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감시단이 긍정적 발언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투표 과정을 감시하는데도 제한이 있었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감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누가 당선자로 발표되더라도 패자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샤피크가 당선된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무슬림형제단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지난해 ‘혁명의 성지’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무슬림형제단 소속 5만여명이 집결해 반정부 시위의 불꽃을 다시 피웠다. 헌법재판소가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FJP)이 장악한 의회의 해산명령을 내리고 과도정부 역할을 하는 군 최고위원회(SCAF)가 군통수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는 임시헌법을 발표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시위에 참여한 무함마드 가말은 “투쟁이 시작됐다”며 “민중이 선택한 정통성이 늙은 장군들의 탐욕 때문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세력은 무바라크가 혼수상태에 빠져 교도소 내 의료시설에서 군 병원으로 이송된 것을 두고 “좀 더 편한 곳에서 지내기 위한 책략”이라고 주장한다. 병원 앞에는 “무바라크의 무덤에 신발을 던질 준비가 돼 있다”고 외치는 시위대와, 이번 대선에서 샤피크에 몰표를 던진 친 무바라크 지지자들이 모여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바라크 지지자는 “그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며 “무바라크는 30년간 평화롭게 우리를 지켜줬다”고 BBC방송에 말했다.
무바라크의 상태와 관련, 미국 심장의학회 대변인인 렌스 베이커 박사는 “무바라크가 겪은 임상적 사망이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심장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로 보인다”며 “생명연장장치로 혈액과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무바라크의 변호인은 “군부가 그를 좀 더 일찍 군병원으로 옮겼어야 했다”며 “무바라크가 사망하면 군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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