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가 총파업에 돌입한 어제, 부랴부랴 지하철 역으로 달려갔다 눈 앞에서 문닫고 가버리는 열차를 쳐다보며 욕 삼키다가 의자에 앉고 보니 양 옆으로 할머니들뿐이었다. 10시를 넘긴 늦은 아침 시간에 1시간 배차 간격인 서울역행 경의선을 기다릴 수 있는 세대는 그분들일 터여서 여유로이 담소 속에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오는데 나는 파우치를 꺼내 미처 다하지 못한 화장의 완성이나 이루려는 것이었다.
반쯤 그리다 만 눈썹을 그리고 마스카라로 싹싹 속눈썹을 말아 올리는데 웬걸, 할머니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거 하면 눈이 커 보이나 효과가 있나 값은 얼마나 하나, 이것저것 따져 물으시는데 대꾸해드리면 될 것을 나는 어색한 웃음만 내리 짓고 있더란 말이다.
이래서 친구들 왈 시어머니 팔짱 끼고 쇼핑하기가 죽기보다 싫더라고들 한 건가. 무심한 나의 태도에 일찌감치 내게서 등 돌린 할머니들은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어디 가냐, 누구 만나냐, 머리는 어디서 볶았냐, 친목회 멤버처럼 정겨워 보였다.
늙어 왔다는 것, 한 시대를 함께 겪어 왔다는 것의 유대는 바로 이런 격의 없음이 증거해 줄 테지. 한 할머니가 밀고 온 유모차 안에 긴 무엇인가 세워져 있어 물으니 가야금이라 했다. 처녀 때부터 꿈이었는데 이제야 배워요. 몸이 아프니 이렇게 실어 나를 밖에요. 불현듯 엄마가 생각났다. 집에 전화하니 할머니 제사라 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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