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오너 비리에는 고가의 그림이 빠질 수 없는 것일까. 수십 점의 명화(名畵)들이 김찬경(55)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주머니 속을 채우는 데 사용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2008년 삼성그룹 특검 수사 당시 등장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오리온그룹 비자금 수사로 유명세를 탄 앤디 워홀의 '플라워'에 이어,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 등 23점의 그림이 김 회장의 비리에 등장한다.
김 회장의 그림을 활용한 불법행위는 다양하고 폭넓었다. 그는 미래저축은행과 갤러리 칩스스페이스 등이 소유한 그림 12점(구입가 기준 94억여원)을 개인 담보로 제공하거나 로비 용도로 사용했으며, 저축은행이 대출자에게 담보로 확보한 그림 11점(감정가 기준 274억원)을 무단으로 담보 해지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범죄 행위에 활용한 그림의 면면은 화려하다. 앤디 워홀의 '플라워'(구입가 25억원)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구입가 21억원) 등 4점은 지난해 7~11월 그의 차용금 20억원에 대한 담보 등 명목으로 서울옥션에 넘어갔다. 그는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를 위해 지난해 9월 하나캐피탈로부터 145억원을 투자받는 과정에서도 박수근 화백의 '노상의 사람들'(구입가 11억3000만원) 등 4점을 은행 몰래 담보로 제공했다. 필립 거스턴의 '인사이드'(감정가 42억원) 등 그림 11점도 금융업체에 담보로 잡히고 자신의 유상증자 자금으로 활용햇다.
로비를 위해 그림을 사용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김 회장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 금융감독원의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도상봉 화백의 '라일락'(구입가 3억여원) 등 그림 2점을 지난해 10월 선물했고, 박인숙 화백의 '그리움'(구입가 230만원) 등 3점은 지인들에게 선물로 줬다.
검찰 관계자는 "김찬경 회장은 미래저축은행 서초지점 4층에 갤러리를 따로 마련해 미술품을 보관했다"며 "오리온그룹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매매기록이 남지 않는 그림 거래의 특징을 교묘히 활용, 범죄에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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