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 없고 공부 담 쌓던 천덕꾸러기, 이젠 학교 제빵반 '수재'됐어요"
중학교 때 결석을 밥 먹듯 하던 안산 광덕고 2학년 김연호(17ㆍ가명)군은 이제 학교 가는 것이 좋아졌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아 몰래 PC방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던 모습은 이제 과거가 됐다. 점차 자신감도 회복됐고, 이제는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김 군은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처럼 학교생활이 즐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군은 "해보고 싶은 직업이 몇 가지 있어 고민하고 있다"고 웃었다.
시흥 신천고 3학년 안준호(18)군은 수업이 끝나면 제과제빵반으로 향한다. 이 학교는 인문계지만 야간자율학습 대신 제과제빵반, 컴퓨터자격증반, 미술디자인반, 체력증진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손재주는 뛰어났지만 공부에는 담을 쌓았던 안 군은 이제 '수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빵 하나 만큼은 기막히게 잘 만들기 때문이다. 안 군은 "3시간이나 되는 제과제빵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면서 "만약 일반고에 들어갔다면 여전히 꿈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군은 요즘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혁신학교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2009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혁신학교가 3년 만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화가 없던 가정에 사랑이 넘치고 폭력이 다반사였던 학교에 웃음이 피어나고 있다. 기존 학교와는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혁신학교의 성과는 만족도 조사에서 잘 나타난다. 경기도교육청이 2009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70%대에 그쳤던 만족도가 지난해에는 90%를 돌파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해가 갈수록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혁신학교 구성원들은 성적을 떠나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기본으로 한 소통을 만족도 개선의 첫째 이유로 꼽았다. 학생들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경쟁이 아닌 협동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산 광덕고 권용만(45) 혁신부장은 운동장에 던져 놓은 축구공 5개로 지난 3년간 확 달라진 교육환경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한 달이 넘도록 축구공 5개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학생들은 낙오자의 특성인 무기력 그 자체로 축구공을 건들지도 않았다.
이 학교 교사들은 수업보다 인성 혁신에 중점을 두고 일주일에 3번, 하루에 2시간씩 '놀아주기' 시간을 가졌다. 종목도 대상도 정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냥 '놀아주기'였다. 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교사들의 관심을 표현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처음엔 마지못해 끌려왔던 학생들도 차츰 동참하면서, 놀이가 이제는 여행, 직업체험으로까지 확대됐다. 물론 학생들이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평가한다.
권 부장은 "변화 정도를 수치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꼴찌라는 자괴감에 빠져 의지도 없던 아이들이 뭔가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큰 변화"라고 말했다.
신천고 신용찬(57)교감도 혁신학교의 성과에 대해 소개했다. 신 교감이 2010년 3월 첫 부임했을 때만 해도 신생학교로 첫 혁신학교여서 학교 복도마다 담배연기가 난무했다. 당시 학생 흡연률은 어림잡아 50% 이상. 중학교 성적이 바닥인 학생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선택한 학교라서 애초부터 면학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2년을 넘긴 올해 여러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일단 교내에서 담배꽁초가 사라졌다. 흡연률은 10% 정도로 떨어졌고, 거친 아이들이 모였어도 그 흔한 '일진'조차 없다. 잠만 자던 학생들은 이제 스스로 조별활동 내용을 정하고 진로교육을 받고 있다.
신 교감은 "많은 학생들이 초ㆍ중학교 때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겉돌며 마음을 닫았다"며 "교사도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이 서서히 자존감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시 파평면 파평초교에서 만난 김준현(10ㆍ가명)군도 학교 자랑에 침이 마른다. 파평초교는 최북단의 혁신 초등학교로, 전교?59명 중 4분의1 정도가 일부러 혁신학교를 찾아온 학생들이다. 김 군은 고양시의 한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참다 못해 1년 전 전학 왔다. 김 군은 "전에는 학생수가 1,500명이나 됐지만 지금 학교는 작아서 서로 다 잘 알고 무엇보다 학교폭력이 없어서 좋다"고 웃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김기중기자 k2j@hk.co.kr
■ "그 학교 옆 전세 구해주세요"… 부동산 시장도 들썩
좋은 학교는 학생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자립형사립고나 특수목적고도 아닌 일반 학교가 학생들을 모으다 못해 집값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례적이다. 경기도 혁신학교 얘기다.
60여년 된 경기 양평군 용문면의 조현초등학교는 2009년 9월 1기 혁신학교로 새 출발을 했다. 학생 수가 줄면서 폐교위기에 놓인 시골학교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독창적 수업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전학생들이 몰려왔다. 한때 학생수가 80명선까지 떨어진 조현초교는 혁신학교 운영 3년이 채 안된 올해 학생이 340명으로 불었다. 학년 별로 한 반이던 학급 수도 두 반으로 늘며 이제는 시설확충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경기도교육청이 2010년과 지난해 학생수를 비교한 결과 대부분 혁신학교의 학생수가 늘었으며 일부 학교는 위장전입자를 가려 입학을 거부하기까지 하고 있다.
학생수 증가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시흥 신천고등학교의 경우 주변 고교에서는 미달자가 속출했는데도 이번 학년도에 지원자 중 30명이 탈락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학생이 몰리며 올해 25명이었던 학급 정원도 30명으로 늘렸다.
혁신학교들은 어느새 부동산 시장에서도 ‘블루칩’ 대접을 받고 있다.
한빛초교가 있는 파주 운정신도시 내 일부 단지들은 전셋값이 처음 입주 때보다 수천만원 올랐다. 이 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아예 혁신학교를 딱 찍어서 전세를 구해달라는 학부모들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성남시 판교신도시 내 보평초ㆍ중교와 가까운 아파트단지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M부동산 관계자는 “판교역에서 가깝다는 이점도 있지만 혁신학교도 무시할 수 없다”며 “혁신학교 전학이 가능한 아파트들의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도 높게 형성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부동산중개업소들이 혁신학교를 내세우며 매물을 홍보하고, 일부 건설사들은 분양 때 혁신학교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부동산의 속성상 우수한 학교를 호재로 삼겠지만 이는 결코 혁신학교가 의도하는 게 아니다”며 “혁신학교는 학교 주체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이뤄지는 행복한 학교로 우수학생을 선발해 특권교육을 하고자 하는 특목고나 자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창훈기자
■ 혁신학교란?
혁신학교란 2009년 경기도교육감 선거 당시 김상곤 후보가 획일적인 공교육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배양하자는 취지로 공약해 탄생했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교장과 교사들에게 학교 운영 및 교과 과정의 자율권을 줘 교육 과정의 다양화를 꾀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혁신학교에서는 일반 학교에서 볼 수 없는 자치 공동체와 전문적인 학습 공동체가 즐비하다. 또 학생과 교사 등 주체들이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학업 만족도가 일반 학교보다 월등히 높다.
첫해 13개 초ㆍ중ㆍ고교로 출발한 혁신학교는 올해는 과천을 제외한 경기도 30개 시ㆍ군에서 154개교가 지정됐다. 대학입시 때문에 고교의 참여는 저조해 현재 18개교에 머물고 있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4년 동안 운영되며, 매년 1억~2억원씩 지원된다. 4년 후 추가로 지정될 수 있다.
한편 혁신학교의 취지에 공감한 서울 강원 광주 전남ㆍ북 충남교육청이 명칭은 다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한 혁신학교를 도입해 현재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중이다.
이범구 기자 eb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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