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30 세상보기] 중앙시장 지하에서 서울의 미소를 보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중앙시장 지하에서 서울의 미소를 보다

입력
2012.06.20 12:04
0 0

아무리 소설과 드라마 이야기라지만 서른의 어떤 여자들에게 서울은 ‘달콤한 나의 도시’이기도 하던데, 나에게는 언제나 서울이란 씁쓸한 너의 도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차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차이는 게 뭔고 하니 간단히 말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내 마음에 너 있을 곳 없다,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차이는 것일 텐데 서울에는 자꾸 차이기만 했다. 집값과 물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솟는 이 도시에서 버틸 수 없어서 자꾸 밀려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 발자국씩 밀려나면서 한 발자국씩 자꾸 실연당한다. 물론 고향에서 일할 곳 없어 서울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도 가슴 속에 간직한 실연의 기억은 동일하게 씁쓸할 테다. 게다가 개발의 광풍은 특히나 골목을 미워하고 구박한다. 이를테면 종로통의 피맛골이 없어져 실연한 분들 꽤나 계실 것이다. 추억이 사그라져 섭섭한 건 견딜만하지만 살고 일하는 터전에서 밀려나면 실연 정도 가벼운 말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상흔이 된다. (용산을 보라!) 골목이 밀려난 자리엔 어김없이 주상복합빌딩이 우뚝 선다. 자본주의가 이런 거라며 세상 이치를 애써 되새겨도 실연한 마음이 스산한데 버섯처럼 자고 일어나면 불쑥 솟는 근사한 그 건물들은, 마치 순진했던 옛 남자가 이재에 훤해져서 성과급 자랑도 하고 신수도 훤해졌지만 주가지수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게 된 걸 마주친 듯 참담하다. 화제가 된 영화 ‘건축학개론’을 좋아하는 남자들이라면 이 마음 더 잘 알 것이다. 한때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남자가 차를, 여자는 가방을 더 바꾸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럴 때 마음이 아픈 이유는 두 번 차이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내 자리 없음을 확인할 때 한 번, 나에게도 이제 그 자리 없음을 확인하게 되어 두 번, 한 명에게 거듭 실연당하는 것으로 모자라 서울에서는 두서너 번 거푸 실연당하니 그야말로 씁쓸한 너의 도시다. 그러다 최근 서울의 다른 얼굴을 발견해 기분 좋게 놀랐다. 지난 십 년간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나를 가장 많이 먹여살려 준 것은 신당동 중앙시장이었는데 서울의 중심부인만큼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오가기 편리했고 돼지, 닭 부산물 같은 고기 언저리부위가 1kg에 3,000원을 넘지 않아 고학생의 단백질 보급에 맞춤이었기 때문이었다. 초가을에 전어까지 사다 먹을 정도로 부지런히 들락날락하던 이 시장 지하에는 횟집만 모인 상가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PC통신에서 중앙시장 회상가 ‘강추’할 만큼 번화했는데 해가 바뀔수록 상권이 저물었다. 광어 반 마리 사먹을 돈도 없었으니 영락한 상가 광경만 보고 발길 돌릴 때마다 마음이 그랬는데 서울문화재단의 프로젝트로 회상가 입구에 ‘신당창작아케이드’라는 간판을 걸고 완전히 달라진 지하상가의 풍경에 코끝이 찡했다. 마치 아까 안면 싹 바꾼 그 남자가 아직도 한 달에 한 권 시집을 산단 걸 알았을 때 같다고 할까, 귀신 나올까 무섭던 지하상가의 빈 공간은 공예가들의 아지트로 새로 태어났다. 미끄럽던 복도며 바닥의 물기도 싹 닦이고, 아직 굳건히 버티고 있는 터줏대감 생선횟집들이 공예가들의 솜씨로 오밀조밀 만든 생선 무늬 간판이며 메뉴판으로 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둥마다 예술가들이 재래시장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기발하고, 앉아서 쉬어 갈 수 있는 작은 책 공간도 있다. 어느 때 시장을 찾아도 상인들과 지역 주민들이 입주 예술가들에게 유리나 도예를 배우는 공방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었다. 토요일에는 조금 더 행사가 다양하다니 서울문화재단 누리집 (www.sfac.or.kr)에서 확인하면 된다. 입주 작가가 ‘깔끄미’ 장판으로 만든 유쾌한 명품 백, 역시 입주 작가의 작품인 ‘스마트폰 때밀이’ ‘친구사이다’ 등 작품을 보면서 웃다 보니 입안에 단맛이 퍼졌다. 아직은 이 도시에 사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음을 알 때, 그제야 이놈의 서울은 (씁쓸하고)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그냥 무턱대고 단 맛보다 그 맛이 은근했다.

김현진ㆍ에세이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