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 항우(項羽ㆍBC 232~BC 202)가 진시황(秦始皇) 병마용(兵馬俑)에 불을 질렀다는 그 동안의 상식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항우가 2,200여년 동안 뒤집어 써온 방화범 누명을 벗을지 주목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인터넷 사이트는 19일 싼친(三秦)도시보와 지루(齊魯)만보를 인용, 최근 병마용 1호갱에 대한 3차 발굴에서 목탄과 불에 탄 흔적 등이 발견됐지만 이는 인위적인 방화보단 자연발화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문가의 진단을 전했다.
중국 언론들은 특히 류잔청(劉占成) 발굴대장이 항우가 진시황 병마용을 방화했다는 추론에 6가지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한 점을 강조했다.
류 대장은 ▦항우의 30만 대군이 침입했다고 보기에는 병마용 각 갱 입구의 보존 상태가 너무 완벽하고 ▦병마용이 일렬로 줄을 서 있어 누군가가 훼손하려 했다고 보기 힘들며 ▦병마용의 각 몸통에 공격받은 상처가 없고 ▦병마용이 묻힌 곳이 진흙층인데도 파괴하러 온 이들의 족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위치가 바뀌거나 훼손된 병마용도 정도가 심하지 않고 ▦방화의 유력한 증거인 목탄이 가지런히 정돈돼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방화보다는 자연발화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 동안 학자들은 항우가 진나라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와 등의 기록에 입각, 항우를 병마용 방화의 유력한 범인으로 추론했다.
항우의 방화로 3개월 간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도 사실은 또 다른 궁전인 함양궁(咸陽宮)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시안(西安)시 고고학연구소가 2002년부터 진시황의 아방궁을 합동 발굴한 결과에 따르면 이 곳에서 불에 탄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함양궁에서는 불에 타 붉게 변한 토양 등 오히려 방화의 흔적이 뚜렷하다.
진시황 아방궁 고고학 공작대를 이끌고 있는 리위팡(李毓芳) 연구원은 "이제는 마땅히 항우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200여년 만에 드러나는 객관적 증거가 이런 데도 그 동안 항우가 누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한고조 유방(劉邦ㆍBC 247~BC 195)이 항우를 공격할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진시황이 숨진 뒤 천하의 패권을 놓고 항우와 대결한 유방이 항우에게 죄를 씌웠다는 것이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것이란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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