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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무용가 김영순 신작 공연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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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무용가 김영순 신작 공연 두 편

입력
2012.06.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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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뉴욕에 사는 무용가 김영순(59)씨가 신작 'Here Now So Long'과 'Ssoot(숯)'을 18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첨단의 도시 속을 가로지르는 한국 여인의 마음이 짙게 스민 이 작품들을 그는 "새카맣게 타버린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해프닝의 일회성과 계산된 혼돈 사이를 오가며 펼쳐지는 무대는 캠코더가 끼어들어 뉴욕이라는 곳이 인간에게 강요하는 존재의 분열을 그대로 시각화해 낸다. 멀티미디어 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이스라엘 사람 데이비드 티로시는 무대 한편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무대의 실시간 영상을 송출한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처럼 이미지는 실시간으로 변형돼 스크린을 장식한다.

낡은 매체, 신문은 여기서 제자리 찾기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전면 가득 특정 신문의 제호가 확대 투영된 가운데 시작하는 무대에서 행인들은 신문을 갈기갈기 찢는다. 극도로 확대되는 소리를 깔고 여성 무용수가 광란적으로 독무를 이어 간다. 결국 쓰레기만을 생산하는 미디어에 대한 조롱이다. 카메라는 그 상황을 담아 시간차를 두고 재생함으로써 혼돈을 창출한다. 무대 위에는 철저히 해체된 구미디어의 잔해만이 스산히 굴러 다닌다.

그 같은 상황에 인간들은 무관심하다. 각자 쾌락만 좇을 뿐이다. 서로를 격렬히 탐하는 남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추적하고, 전면의 영사막은 그 모습을 확대 재생산한다. 스와핑(섹스 파트너 바꾸기)까지 묘사하는 커플의 춤은 매우 관능적이다.

격한 테크노 비트의 향연장 같던 무대에 반전의 계기가 찾아든다. 한국인이라면 몸에 스며 있을 굿거리 장단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춤 추는 상황에 우리 장단이 틈입하면서 무대의 광란은 서서히 잦아든다. 어지러이 춤을 추던 무용수들도 제 짝을 찾아 비트에 맞춰 춤을 춘다. 흐트러진 주변을 정리하기까지 한다.

한국적 소재는 2부 '숯'에 가서 선명해진다. 구성진 구음에 맞춰 여성 무용수가 걸어 가면 대금 소리, 첼로 소리가 육중히 내리깔린다. 소복만 입었다면 그대로 현대판 씻김굿이다. 가수 한대수가 걸죽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도 들린다. 김씨는 "한대수의 'Exile', '북소리' 등에 나오는 가사는 기막히다"며 굿거리 장단 등 그의 몸 속에 강인하게 온존하는 한국성에 대해 말했다.

'숯'의 말미 20여분 동안 김씨는 무대에 등장해 독무를 춘다. 거대한 하수구 영상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펼쳐지는 그의 춤사위는 뉴욕 생활 30년의 결산이라 해도 좋다. "미국 사람들에게 새카맣게 탄 내 가슴을 보여 주고 싶어요."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숯은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잖아요?"무용수들의 몸짓에 소통을 향한 온기가 살아 있는 이유다.

이 무대는 23, 24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회관, 27일 성남아트센터 공연을 남겨 두고 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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