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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무상보육 파탄 누가 책임질 건가

입력
2012.06.1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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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0~2세 무상보육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고갈로 파탄지경에 이르자 여야 정치권이 저마다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무상보육 정책에 대해 책임 있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추경예산을 편성해서라도 무상보육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여ㆍ야ㆍ정 경제협의체를 구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포퓰리즘 정치의 실패 책임을 슬쩍 피해가려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할리우드액션에 불과하다. 누더기가 돼버린 영ㆍ유아 무상보육사업은 전적으로 정치권의 성급한 복지 포퓰리즘 경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당초 영ㆍ유아 무상보육 확대를 앞서 치고 나온 건 구(舊) 민주당이다. 과감한 무상복지 시리즈로 지지층을 파죽지세로 넓혀 나가던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초 보육비 지원을 5세 이하 모든 아동으로 확대하는 등의 무상보육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구 한나라당은 그 때만해도 제법 입바른 반론을 폈다. "민주당의 복지혜택을 실현하려면 국민들이 세금폭탄을 맞을 것"이라며 "무상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라"는 입장을 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한 순간에 여당 체면 같은 것 내팽개치고 아예 복지 이슈를 선점해 버리겠다고 나섰다. 4ㆍ27 재보선 참패 직후다. 친박(親朴) 신주류로 부상한 황우여 새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실패한 'MB노믹스'를 수정하는 정도를 넘어, 포퓰리즘 경쟁을 벌여서라도 야당의 복지담론을 고사(枯死)시켜 버리겠다는 기세였다. 만 0~2세 무상보육 확대는 이렇게 가열된 정치권의 선심경쟁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결정적으로 일탈한 결과물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여야가 예결위에서 전격 합의 처리한 만 0~2세 무상보육 예산은 원래 정부안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들고 나서고, 여당이 편승하면서 '꼼수'가 나왔다. 예산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정치권이 생색을 낼 수 있는 묘안으로 보육시설 이용률이 낮은 만 0~2세부터 무상보육을 실시키로 합의해 버린 것이다. 예산 부담은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서울 예외) 부담하는 식이었으나, 지자체와 사전 협의조차 없었다.

부작용은 즉각 불거졌다. 당장 각 지자체들이 예산이 없다며 뒤로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국회는 생색을 냈지만 이젠 정부가 예정에 없던 수천억 원의 돈을 마련해 그쪽에 쓰든지, 무상보육을 중단하든지 결정해야 하는 난관에 빠졌다.

예산 문제 보다 더 나쁜 부작용도 빚어졌다. 정치권은 맞벌이 부부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생후 24개월 이하 아기를 시설에 맡기려는 부모가 많지 않을 것으로 속단했다. 하지만 맡기지 않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상황은 묘하게 뒤틀렸다. 맞벌이 부부든 아니든, 장 볼 때든 영화 볼 때든, 심지어 친구들 만날 때도 너도나도 젖먹이들을 시설에 맡기다 보니 50% 선에 머물던 영아시설 이용률이 단숨에 80%까지 치솟았다. 정작 탁아서비스가 절실한 맞벌이 부부들은 졸지에 애 맡길 곳이 없어져 아우성이고, 아기들은 아기들대로 엄마랑 생이별을 해야 하는 신종 '가정파괴정책'이 돼버린 것이다.

사태가 이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성도 없다. 그저 정부에 혈세를 내놓으라고 떼를 쓰고, 일단 예산이 추가돼 그럭저럭 고비를 넘기면 나중에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차제에 복지의 원칙을 수혜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재정 여건에 맞춰 꼭 필요한 부문에 복지혜택이 우선적으로 도달한 뒤, 점진적으로 보편화하는 우선순위 원칙도 보강돼야 한다.

최근 일본 민주당조차 복지 포퓰리즘 정책을 대거 포기했음에도, 19대 국회는 여야 없이 무상보육 확대와 '반값 등록금' 등 포퓰리즘 법안을 대거 상정했다. 선거엔 약이 될지 모르나, 정치 자체를 무너뜨리는 독배로 돌아올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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