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란 게 이런 거구나." 박정현은 지난해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연예인이란 게 어떤 건지 실감했다고 했다. 1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해온 '유명' 가수의 일상을 뒤바꿔놓을 만큼 TV의 힘은 위력적이었지만, 박정현은 인기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3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 '패럴랙스(Parallax)'에 가수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두 번의 졸업과 두 장의 앨범. 7집 '사랑한다고 말하는 10가지 방법(10 Ways to Say I Love You)' 이후 3년여 시간 동안 박정현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1년 시작한 학업을 9년 만에 마쳤고, 국내 최고의 가수들이 경연을 펼친 '나가수'에서도 명예롭게 '졸업'했다. 자신의 초기 노래를 다시 부른 앨범 'Cover Me Vol. 1'도 발표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나가수'로 얻은 인기다.
"여태까지 참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누가 절 알아보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나가수' 이후론 길거리에만 나가도 멀리서부터 제 이름을 부르며 알아볼 정도로 당황스런 순간들이 많았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이젠 괜찮아졌지만 처음엔 적응하느라 힘들었죠."(웃음)
'나가수'와 MBC '위대한 탄생2' 등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낯을 가리는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캐릭터가 강해졌다"고 했다. 정석원, 황성제 등 꾸준히 호흡을 맞춰 온 작곡가들 외에 인디 뮤지션들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는 앨범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나가수' 출연이 가져다 준 변화였다.
19일 음원 공개에 이어 20일 정식 발매되는 8번째 정규 앨범의 제목 '패럴랙스'는 '관측 위치에 따른 물체의 위치나 방향의 차이'를 뜻한다. 그는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 된 단어인데 SF 영화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며 "보는 입장과 해석에 따라 제 음악도 여러 측면으로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앨범 제목으로 딱 맞겠다 싶었다"고 했다.
8집 '패럴랙스'는 박정현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앨범이다. 1980, 90년대의 팝 발라드와 모던 록, R&B가 현재의 음악과 어떻게 공존하는지 보여준다. 4집의 프로듀서였던 그룹 015B의 정석원과 6, 7집에서 큰 역할을 한 황성제, 그룹 러브홀릭의 강현민을 비롯해 인디 록 밴드 몽구스의 몬구, 실험적인 음악으로 인디 음악계에서 유명한 'MOT'의 이이언이 작곡자로 참여해 박정현의 음악 세계를 더욱 확장시켰다. 박정현 자신이 미리 준비해뒀던 자작곡 6곡 중에선 한 곡만 앨범에 실렸다. 타이틀 곡 '미안해'는 멕시코 그룹 카밀라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저를 수식하는 '나가수의 박정현' 'R&B 디바' 같은 것은 내려놓고, 제 음악의 스토리에서 다음 챕터만 강조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저 자신을 강조하기 위해선 기존의 습관을 버리고 마음을 더 열어야 했죠. 기존의 제 음악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뮤지션들에게 영향 받고 또 그들과 교류하고 싶었어요."
'나가수' 출연의 부담감이 극에 달했을 때 그는 중도 하차를 고민했다고 했다. '명예졸업'까지 그를 지탱하게 해준 것은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내 음악의 다양한 면을 들려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이었다. 데뷔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새 앨범에 대해 "사람들에게 어서 들려주고 싶다는 기분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이라며 "아무 계획도 없이 만든 앨범인데 축복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앨범 발표에 이어 곧바로 공연에 돌입한다. 전국 10개 도시를 도는 전국 투어는 23, 24일 김해 콘서트를 시작으로 대구, 일산, 광주, 서울, 부산, 대전 등으로 이어진다. (02)796-1383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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