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이후 이집트 과도정부를 이끌어 온 군 최고위원회(SCAF)가 권력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SCAF는 이집트 대선 종료를 앞둔 17일 새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입법권과 예산 감독권을 군부에 권한 아래 두는 임시헌법을 발표했다. 임시헌법에는 SCAF가 새 헌법을 제정할 제헌위원회 위원 100명을 직접 지명하는 것과 새 헌법이 마련될 때까지 총선을 실시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헌법재판소가 총선 부정을 이유로 14일 의회 해산 결정을 내리자 SCAF는 대선 결선투표가 시작된 16일 의회해산명령을 내리고 사전허가 없는 의원들의 의사당 출입을 금했다.
7월까지 정권을 민간에 넘기겠다고 거듭 약속했던 군부가 말을 바꾸자 전문가들은 "노골적인 군사 쿠데타"라며 비난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지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는 "민주화와 변혁을 가로막는 중대한 역행"이라며 정권이양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SCAF를 강하게 비난했다. BBC방송은 "군부가 대선 결과 및 민간정부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고 공표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SCAF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이달 말까지 새로 선출될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18일 공표했다. SCAF의 무함마드 알아사르 장군은 수도 카이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화국의 새 대통령은 완전한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무슬림형제단은 이날 자유정의당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무슬림형제단의 정당조직인 자유정의당은 이날 웹사이트에 "무르시 후보가 국민이 선출한 첫 대통령이 됐다"고 밝혔다. 무르시 후보도 기자회견에서 "모든 이집트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또 다른 후보인 아흐메드 샤피크 측도 "샤피크가 51~52%로 앞서고 있다"며 반박했다. 투표 결과는 21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무르시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지만 권력 이양이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외신들은 SCAF가 대선을 앞두고 의회해산을 명령하고 임시헌법을 공표해 권한 확대를 꾀한 것은 이번 대선을 사실상 무효화하려는 꼼수라고 분석했다. 무르시가 첫 민선 대통령이 돼도 절름발이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SCAF가 헌재 결정을 배후 조정했다고 의심하면서 19일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가하겠다고 밝혀 정국은 당분간 혼란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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