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진입하는데, 서부간선도로에서 길이 막혀 꽤 긴 시간을 도로 위에서 그냥 보냈다. 라디오에서는 내부순환로까지 이어진 정체가 한동안 계속되어질 것이라고 했다. 랜드 마크라더니, 가까이 우뚝 솟은 주상복합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네 집이었다. 이사한 지 여러 달인데, 딱히 집에서 만날 일이 없어서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전화를 거니 마침 집에 있던 친구가, 어서 오라며 반겼다. 시원한 물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며 좀 쉬는 사이, 정체도 풀릴 것이었다.
방문객용 주차장인 2층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누르니 19층이 눌러지지 않았다. 1층 로비의 버튼만 눌렸다. 1층으로 내려가자 안내데스크에 정장 차림의 경비원이 있었다. 안내데스크를 거쳐야만 고층으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경비원은 내 이름을 묻더니,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모모라는 친구 분이 로비에 있는데 방문 약속이 돼있느냐고. 전화기 저편에서 맞노라 확인을 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복도에서도 CCTV 카메라가 내려다봤다. 그저 친구네 집을 온 것뿐인데…. 소탈하고, 표준어 사이에 간간이 끼어드는 사투리가 들을 때마다 정겨운 친구였다.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보다, 또 다른 정체의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어서 내 집으로 가고만 싶었다.
하긴, 더 한 경우도 있었다. 유년시절 한집에서 살아 이래저래 정이 깊은 막내고모가 분당의 아파트로 이사를 해 집들이를 한다 했다. 그때만 해도 주상복합이라는 말이 낯선 때였다. 가까운 친척끼리 모이는 자리라 편한 복장으로 고모 집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단박에 아파트 주차장 입구까지 길을 안내했다. 주차장을 들어가려는데, 어떻게 오셨느냐고 옷에 날을 세운 경비원이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고모네 집에 집들이를 왔노라고 소상히도 답을 했다. 그랬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얼결에 꺼내 보여주기는 했으나, 차에서 내려 고모 네까지 올라가는 내내 마음이 꺼림칙했다. 심지어 내 행색이 수상한가, 새삼 옷차림을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딱히 그 때문은 아니지만 이후로 다시 가지 않았으니, 지금도 똑같은 출입절차가 계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만 있고 '너'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거주자의 사생활보호라는 기능을 앞세우느라 집을 찾아든 손님에 대한 예는 없는 그날 그 '집의 무례'는, 고모네 새 집의 실내인테리어보다 훨씬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옛날, 싸리를 엮어 만든 외가의 사립문은 안으로 열리는 형태였다. 버선발 외할머니보다 먼저 문이 어린 나를 안아 들였다. 솟을대문이든 일각문이든 한옥 대문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오면 팔을 벌리듯 문이 안으로 활짝 열린다. 집이 사람을 반겼다.
골목길이 품고 있던 배웅의 풍경은 또 어떤가. 떠나는 손님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나가서 작별하여 보내는 일…. 골목 깊숙이 자리한 류가헌에 가끔 어른이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가 왔다 가면, 대문을 나서서 골목길까지 배웅을 한다. 좁은 골목을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 나가다 보면, 마치 활짝 이야기꽃을 피웠던 만남의 시간이 꽃다발 묶음을 손에 쥔 듯 조밀해지는 것 같다. 멀리 길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배웅하는 일은 말줄임표처럼 관계에 여운을 남긴다.
이 배웅 문화가,아파트나 빌라 등이 주거 형태로 보편화되면서 거즈 반 사라졌다. 이제 그 일은 현관문 앞에서 이루어진다. 거개의 현관문이 철문이기 마련이어서, 문이 닫히면 차가운 금속성을 낸다. 어느 집에서 잘 놀고 나오다가 현관문이 등 뒤에서 철컥 소리를 내며 닫히면, 그동안 그 집에서의 시간들에도 마침표가 찍히고 관계에도 철컥 자물쇠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제라도 현관문을 나서서 1층 출입문까지, 골목길까지, 더 많은 배웅을 해야겠다.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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