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따돌림 등 군 생활 중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한 군 장병에 대해 국가 책임을 폭넓게 인정해 국가 유공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집단 따돌림을 이유로 하는 군 장병의 자살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처음이다. 그 동안은 원인이나 경위와 관계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에는 국가 유공자로 인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현재 진행 중인 유사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18일 공군에 입대해 생활하던 중인 1999년 자살한 장모(당시 21세)씨의 유족이 대구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처분취소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을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군인이 군 복무 중 자살로 인해 사망한 경우 국가유공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교육 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인과관계가 인정이 되는데도 자살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자유 의지가 배제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군대 내 자살이 직무수행 등 부대 내 생활과 어느 정도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군 자살자에 대한 국가 유공자 인정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수안 대법관은 특히 보충 의견을 통해 "군대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거나 적절히 치료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살하는 현실이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거나 자살자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안대희ㆍ양창수ㆍ민일영 대법관은 "자살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으로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하는 이상 그것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1998년 공군에 입대한 장씨는 부대 전입 후 업무 처리 미숙으로 선임병으로부터 자주 질책과 따돌림을 당하던 중, 이듬해 소속 부대에서 실시한 장병학술평가시험에 대리 시험을 보다가 적발이 됐다. 이로 인해 심적인 괴로움을 토로하던 장씨는 유서를 남긴 채 화장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 측은 2001년 국가유공자등록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유족 측은 2006년 군의문사진상위원회에서 장씨의 자살이 부대원의 집단 따돌림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다시 법적 절차를 밟았지만 1ㆍ2심에서 다시 패소했다.
한편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자해행위'를 국가유공자의 제외사유로 규정하던 국가유공자법이 개정ㆍ시행돼 다음달부터 군복무중 폭언이나 폭행, 가혹행위를 못견뎌 자살한 장병들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내달부터 복무중 폭언이나 폭행 등을 못견뎌 자살한 장병들이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공사상자 처리훈령'을 개정했다. 장씨의 경우 향후 순직으로 인정되면 국립묘지 안장은 가능하지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가보훈처의 별도심사를 거쳐야 한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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