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 가혹행위로 자살한 병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군 복무 중 자살이나 자해가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면 국가유공자 예우에서 배제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소송 원고는 선임병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강압에 의한 대리시험이 적발돼 두려움을 느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의 유족이다. 유족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1, 2심에서는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자는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1, 2심 판단 근거가 된 구(舊)국가유공자법은 자살자는 그 원인에 관계없이 원천적으로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않도록 돼 있었으나 지난해 9월 새로 시행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선 자살자라 하더라도 경위와 본인과실 정도를 따져 국가유공자 여부를 판단토록 하고 있다. 해당 병사는 이미 2008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가 자살의 원인인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문제는 이런 다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구조다. 지난 12년 간 평균 140명에 달하는 연간 군 사망자 중에서 자살자는 절반이 넘는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도 120건이 넘는 군 복무 중 자살자의 유족이 군의 '개인적 사유에 따른 자살' 결론을 거부하며 정확한 사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근래 들어 병영문화가 크게 개선됐었다고 하나 여전히 강압적이고 불합리한 문화가 도처에 온존해있다는 반증이다. 무엇보다 문제를 가급적 덮고 축소하려 드는 군내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번 병사도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데 10년이 걸렸다.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서도 14년 째 납득할만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합당하거니와, 때마침 7월부터는 복무 중 자살도 사정을 따져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전공사상자처리훈령'도 개정됐다. 그러나 사자의 명예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지 않는 일이다. 군이 국민의 완전한 신뢰를 얻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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