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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욕하지 마라 찬호는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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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욕하지 마라 찬호는 던진다

입력
2012.06.1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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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에서 전성기를 보낸 박찬호 선수가 부진한 성적과 비판에 시달릴 때 "도대체 왜 은퇴하지 않는가"하고 혼자 한탄한 적이 있다. 5년에 6,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료를 거머쥐고 옮겨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저조한 실적을 보여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계약'으로 거론되던 2000년대 초반부터, 팀 방출과 마이너리그행을 거듭하던 2000년대 후반까지 마음 속으로 수없이 그에게 은퇴를 권했다. 한국 야구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하고 올스타전과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선 우리의 '레전드'가 왜 최고의 순간이 오래 기억되도록 하지 않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은퇴는커녕 박찬호는 지금도 던진다. 일본을 거쳐 야구 인생 마지막 선택으로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한 그는 올 시즌 3승 5패, 평균자책점 4.05로 전설이라기엔 아쉬운 기록을 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던지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프로야구가 올 시즌 최단 190경기만에 300만 관중을 돌파, 800만 관중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데에는 등판 때마다 매진 사태를 빚는 박찬호의 영향이 적지 않다. 한화는 박찬호가 없던 지난해(게임 평균 관중 5,900명)보다 관중이 45% 늘어나(8,500명) 8개 구단 중 넥센과 함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박찬호가 이기든 지든 팬들은 몰리고 그의 투구를 즐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박찬호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됐다. "야구를 할 때 가장 즐겁다"던 박찬호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잘 던질 때뿐만 아니라 못 던질 때조차 야구판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명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야구를 사랑했다.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 힘들었을 아픈 경험마저 그는 피하지 않았다. 삶을 이렇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박찬호의 기록만 되짚어 봐도 높은 정상만큼 깊은 골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1996년 한국인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첫 승 이후 2010년까지 통산 124승으로 아시아 투수 최다승이라는 그의 기록은 눈부시다. 그는 1997년과 1998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선발 중 가장 승수가 많은 에이스였고, 국내 팬들은 TV 앞에서 밤을 지새며 흥분했다. 2010년엔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으로 월드시리즈에 출전해 무실점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는 한편 그는 1999년 한 이닝에 만루 홈런을 두 번이나, 그것도 한 타자(페르난도 타티스)에게 맞은 소위 '한만두' 기록도 만들었다. 메이저리그 123년 역사상 최초이자 앞으로도 여간해선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통한다. 현재 메이저리그 시즌 최다 홈런 기록(73개)을 보유하고 있는 배리 본즈가 2001년 마크 맥과이어의 기록(70개)을 경신했을 때 제물이 된 것도 박찬호였다. 그는 본즈에게 71호, 72호 홈런을 한 경기에 헌납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어려운 고비를 회피한 적이 없다.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매년 팀을 바꾸다시피 하던 박찬호가 2010년 7월 뉴욕 양키스에서 반년만에 전격 방출된 후 그는 팬들에게 "제게 있어서 많은 일들이 흘러갔습니다. 이 또한 흘러 지나갑니다. 흘러가는 것 속에서 잡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괴롭지요. 잘 보면 좋지 못한 것들도 흘러갑니다. 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입니까"라고 말했다.

김희원 요즘 박찬호 등판 때 경기장에는 서진필의 노래 '사나이 순정'을 박찬호가 직접 개사한 '박찬호 순정'이 흘러나온다. 이 노래에서 그는 말한다. '묻지 마라. 욕하지 마라. 찬호는 계속 던진다. … 실패를 해도 욕하지 마라. 찬호의 도전이란다. 박찬호 순정이란다.' 성공했을 때 환호하기는 쉽지만 실패하고 욕을 먹을 때 의연하기는 어렵다. 박찬호의 순정은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상에서 바닥까지 삶을 견디고 즐겨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듯이.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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