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일행의 접 근처에도 장사치가 들어서는데 아낙네가 내려놓은 광주리에는 인절미에 절편이며 시루떡이 그득하고 남정네의 지게에는 잘 익은 탁주가 찰랑찰랑 채워진 술동이가 놓였다. 사내는 또한 지게 꼭대기 세장 목에 조롱박을 네댓 개 매달아 두었다. 접꾼이 열이요 대작 서수가 넷에 선비가 세 사람이니 대식구를 만난 셈이고, 바로 한 발짝 옆과 앞뒤에 어슷비슷한 장막들이 있으니 커다란 주막에 손님 가득한 형국이 되었다. 모두들 조롱박에 탁주를 퍼마시고 한편으로는 떡으로 요기를 하는데, 그들 부부도 대목이라 술과 떡을 저자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치운다. 과장이 어디라고 감히 장사꾼이 들어올 수 있겠냐마는 수문장 이하 수직 군사들도 인정전깨나 받아먹었고 모두 한통속인데다 세시풍속이 되어버렸으니 모른 척하는 셈이었다.
수만 명이 과장에 간신히 들어온 셈이고, 다시 수만 명은 입장도 못 하여 함춘원이나 경모궁 앞에서 떼를 지어 혹시 과장에 남는 자리나 없을까 요행수를 바라거나, 아직도 별다른 묘책을 찾지 못하고 도성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판이었다. 장중한 징소리가 울리자 그물망 너머 단 위에 사모관대 차림의 정승이 들어서고 역시 관복을 입은 시관들이 들어와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다시 한 번 징이 울리고 시제(試題)가 현제판에 내걸리자 일시에 앞줄에서부터 소란이 일어나며, 복만이 다짜고짜 이신통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자아, 얼른 따라오우.
신통이 얼결에 일어서니 복만의 선도에 따라 접꾼 둘이 뒤로 호위하고 따라나섰다. 둘째 줄이었으니 구석이라 하여도 제법 빨리 나섰는데도 현제판 부근이 벌써 모여든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그들은 사람들 틈에 끼어 밀치고 헤집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신통이 시제를 읽는데 문장이 제법 길었다. 만복이가 품에서 작은 병에 담아온 먹물을 세필에 찍어서 종이쪽지와 함께 신통에게 건넨다. 장정 셋이 팔을 쳐들어 신통을 옹위하는 동안 그는 몇 줄의 시제를 초서로 휘갈겨 베낀다. 시제를 옮겨 적은 신통이 붓을 떼자 그들은 다시 그를 둘러싸고 인파를 빠져나온다. 나오면서 보니 이미 드넓은 과장 전체가 솥단지의 끓는 물처럼 출렁대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같은 순간에 시제를 적어 오려는 것이었다.
자기네 접의 장막 안으로 돌아와 이신통은 선비들과 옆의 대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적어 왔던 시제를 간필로 다시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이제부터 접꾼들은 장막 안에 잡인이 얼씬대지 못하도록 둘러싸고 지키는 한편, 서수와 대작들은 행담에 지녀온 참고서적들을 꺼내어 시와 부를 지어내고 책문(策問)을 써낸다. 서일수가 먼저 시를 읊고 시지에 적었고 신통은 부를 적어 나갔으며, 가장 중요하다는 책문이란 국가의 정책을 논설로 써내야 하는지라 시간이 제법 걸리게 되어 있었다. 서일수와 신통은 주제를 놓고 속삭이는 소리로 잠시 논의하니 허두, 중두, 축조를 어떻게 열어 나갈지 그리고 설폐와 구폐에서 비판을 하고는 편종으로 결론을 내어 마무리하기까지 큰 구성이 완료되었다. 이신통으로서는 공부하면서 골백번 써본 적이 있었으며, 옆에 고증과 참고할 책까지 구비되어 있어 줄줄 써나가다 막히거나 미흡하면 선인의 문장과 논점을 확인하니 그야말로 용이 날개를 단 격이었다. 한 식경이 지나서 그들이 맡았던 선비의 시지가 모두 완성이 되었고 시골 선비는 시지를 들고 읽어보며 새삼 탄복하였다.
어허, 글에 법도가 정연하고 문사도 화려하니, 실로 웅문거필이요!
옆자리의 이웃 접에서는 서수와 대작 한 쌍이 두 사람의 거자를 맡았으니 아직도 끙끙대며 반도 끝내지 못했는데, 이쪽이 벌써 끝나자 만복이는 흔쾌하여 그들에게 재촉했다.
자, 얼른 조정(早呈)해야 하오. 우리가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시제를 남보다 먼저 보는 것과, 시지를 빨리 내기 위함이라오.
거자의 호패에 적힌 성명과 거주지를 적은 시지를 이신통의 손에 들려 아까처럼 접꾼들이 둘러싸고 그물망 앞으로 달려가 시지를 받는 관원에게 내밀자, 그는 백 장이 될 때까지 모으고 기다렸다가 뒷전에 기다리고 있는 시관 앞에 바쳤다. 질세라 늦을세라 구름같이 모여든 거자들이 그물망 앞에서 내미는 시지가 그야말로 눈처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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