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마지막 역점 사업인 '2013년 균형재정 달성' 목표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이 '불가능한 목표'라고 진단했다. 성장률 둔화와 감세기조 유지로 들어올 돈은 줄어드는 반면,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공약, 4대강 지류 정비사업 등으로 지출은 늘어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예산 집행의 낭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비과세ㆍ감면을 축소해 중기적으로 재정균형을 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내년 균형재정 달성 불가능" 65%
한국일보가 17일 국내 재정 분야 전문가 20명을 설문한 결과 전체의 65%(13명)가 "2013년 균형재정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이 가운데 절반 이상(7명)은 "최소 향후 5년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균형재정의 전제조건은 경제성장률 5%인데,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올해 성장률이 3%대 초반에 머물 것"이라며 "이래서는 세입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금융시장 불안을 감안하면 공기업 매각 등을 통한 세외수입 확보 또한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김대식 한양대 교수),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각종 복지공약 등으로 예산 규모가 확대될 것이다"(김원식 건국대 교수)라는 등 균형재정 여건이 어둡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비과세 축소 등 정책 의지도 불투명
균형재정을 이루려면 세입을 늘리고 세출을 줄이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거꾸로 가는 정부의 정책을 보면 균형재정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그간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기조에 맞춰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세율을 낮춰왔지만 이에 상응하는 세원 확장 정책은 취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비과세ㆍ감면. 정부는 각종 비과세ㆍ감면을 줄여 세입을 늘리겠다고 공언했으나, 최근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연구ㆍ개발(R&D) 세액공제 혜택의 일몰을 연장하는 등 분명한 정책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의 60%(12명)가 정부의 균형재정 관련 정책 가운데 가장 미흡한 분야로 '비과세ㆍ감면 축소'를 꼽았다. 세수 증대 노력이 미흡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균형재정 중기적으로 달성해야
전문가의 절반(10명)이 "정부의 균형재정 달성 의지는 적절하다"고 평가하는 등 균형재정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85%(17명)는 "2013년 균형재정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경기 둔화에 맞서 재정투입을 늘리고, 긴축할 때는 돈줄을 죄는 등 탄력성이 재정운용의 기본인 만큼 특정 시점에 재정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중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는 "정부의 재정건전성 의지는 바람직하나 특정 목표에 얽매이다 보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며 "악화하는 경기 상황도 감안해 눈에 보이는 흑자 수치보다는 국가부채의 흐름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도 "3년이나 5년 평균 등 일정 기간 재정균형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예산구조조정·세부담 차별화
중기적으로 균형재정을 이루기 위한 정부의 현실적인 대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예산 구조조정(9명ㆍ45%) ▦세율 인상(5명ㆍ25%) ▦비과세ㆍ감면 정비(2명ㆍ10%) 등을 지적했다.
예산 구조조정의 경우 도로, 댐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중심으로 한 경제 분야가 최우선 적용 대상으로 꼽혔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본부장은 "특히 SOC 분야에서 지출을 줄일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복지지출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최근 복지지출 증가율이 7~8%에서 6%대로 떨어졌는데, 균형재정을 목표로 이를 더 낮추는 것은 무리"라며 "SOC에 대한 무분별한 지출을 줄여 복지에 투입하는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율 인상과 비과세ㆍ감면 정비의 기조는 소득계층에 따른 차별화다. 소득세나 법인세의 상한을 높여 많이 버는 개인과 기업이 세금을 더 내게 하고, 이들에 대한 비과세ㆍ감면제도 또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병구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은 "일부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최저한도에도 못 미치고 고소득자들이 주로 가입하는 즉시연금상품에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등의 불합리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문에 참여한 분들
강병구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 김대식한양대교수, 김원식 건국대 교수, 김재영 서울대 교수, 박종규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 박형수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손원익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정근 고려대 교수, 유한욱 KDI 연구위원, 윤용중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정책劇?응? 이영 한양대 교수, 이재준 KDI 경제동향연구팀장,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 최배근 건국대 교수, 현진권 아주대 교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 (이상 20명·가나다순)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2008년 금융위기가 결정적… 22조 투입된 4대江도
MB정부는 집권 첫해인 2008년 -11조7,000억원을 필두로, 2009년 -43조2,000억원, 2010년 -13조원, 지난해 -13조5,000억원 등 4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 재정적자 규모가 컸던 건 2008년 9월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듬해 과감한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선 결과다. 실제 MB정부는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17조9,00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기금까지 합쳐 무려 28조5,000억원을 시중에 풀었다.
MB정부가 4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한 데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초래한 금융위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대선 공약인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대내적 요인도 무시하기 어렵다. 4대강 사업에는 야권과 상당수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일 예산사업으론 사상 최대 규모인 22조원이 투입됐다.
MB정부는 4대강 사업이 수십 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장담했지만, 일용직 등 질 나쁜 일자리만 만들어낸데다 매년 천문학적인 관리비가 추가 투입돼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MB정부가 집권 초기 점증하는 국민들의 복지 수요를 무시한 채 4대강 사업에 '올인'한 것이 지금의 복지수요 팽창을 부른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쏟아 붓고 지류 정비에 15조원을 투입하는 식의 토건 예산 낭비가 재정적자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재정지출 압박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여야 가리지 않고 복지지출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또한 유로존 위기 확산에 따른 추가 재정지출 가능성과 경기 악화에 따른 세입 감소 우려 등을 감안할 때 MB정부의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은 쉽지 않은 목표임이 분명하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 내년 재정지출 삭감 불가피해 경기 악영향
유로존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요구가 강하다. 하지만 올해 추경이 편성되면 내년 균형재정 달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수요 확대와 유로존 위기에 따른 경기 악화 우려로 세입 감소, 세출 증대가 예상된다.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세수는 늘리고 쓸 곳은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 여건은 갈수록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 중인 셈이다.
추경을 편성하면 균형재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재정수지는 당해 연도의 '세입-세출'이어서 올해 추경을 편성한다고 해서 내년 균형재정 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올해 추경 편성과 내년 균형재정 달성과는 상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경이 당해 연도 재정수지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내년 균형재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긴 어렵다. 올해 추경을 편성하면 재정수지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년 균형재정을 달성하려면 상당한 재정지출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뜻인데, 그럴 경우 성장세가 둔화 중인 국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또한 추경 편성을 위한 국채 발행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 중장기적으로 국가재정에 부담을 지우게 된다.
이에 따라 향후 3∼5년 불투명한 세계경제 상황으로 국내 경기가 악화할 경우를 대비해 추경 편성을 포함한 재정지출을 억제, '힘'을 비축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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