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 정부보고서'(초안)는 2008년 8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한국 정부에 이행을 요구한 33개 인권 관련 권고안의 이행 현황과 향후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권고안 관련 내용 외에도 한국 정부가 2008년 이후 시행한 인권 관련 정책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 초안을 검토한 국내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복무제 도입, 차별금지 조치 시행 등 핵심적인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안을 상황논리를 들어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의 인권 관련 개선책만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절하했다.
정부는 유엔의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에 관한 유엔의 권고'에 대해 보고서에서 "(법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남용되고 있지 않으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라며 폐지불가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국가보안법 관련 입건자 수가 늘어나는 것에 반해 기소율이나 구속율은 감소하는 점을 고려하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남용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주장은 논거가 부족하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2008년 56명이던 국가보안법 입건자는 지난해 127명으로 2배 이상 늘었으나 같은 기간 기소율은 57.1%에서 지난해 49.6%로 오히려 감소했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 박주민 변호사는 "국보법이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라는 법의 목적과 달리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보장에 관한 권고'에 대해 보고서는 "적법한 집회 및 시위는 최대한 보장하고 있으며, 야간 옥외집회도 허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헌법 21조는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며 신고제 원칙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허가제처럼 운영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운동 사랑방 활동가 명숙씨는 "집시법을 운영하는 경찰이 '공공안정질서 유지'등 예외적인 근거를 들어 집회 금지를 남발하고 있다"며 "헌법의 진보적인 해석을 무시하고 하위법률의 자의적 규정으로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고 말했다.
유엔의 권고안에 대해 명확한 개선 의지를 표현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여성 이주노동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법 제정 권고'에 대해 보고서는 "2008년 이후 연구용역 등을 수행했으며 쟁점을 검토했고 국회에서도 관련법이 제출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고만 밝히고 있다. 현재 정부가 이 권고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백가윤 참여연대 간사는 "권고안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통계자료를 제시하지 않는 등 구체성이 부족하다"며 "정부가 국내 인권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19일 오후 인권 관련 단체들과 보고서 초안에 대한 간담회를 가진 뒤 7월쯤 유엔에 최종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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